고등학교때 국어는 많이 어려웠다. 고어도 어려웠지만 시는 시대로 어려웠다. 그냥 시를 시 자체로 읽고 그 느낌 그대로 받아 들이면 안될까 싶을 정도로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 대로 배우고 익혔다. 아니 익혔다는 표현보다는 외웠다는 표현이 맞다. 과연 작가가 시를 지을 때 우리가 배운데로 그런 의도가 있기는 했을까 의심도 못하고 빨강색 밑줄, 별표 땡땡…뭐 그런 것들로 도배를 해가며 작가의 의도라 믿고 열심히 노력하며 시를 좋아할 수 없게 되버렸다. 꼭 작가의 의도를 그렇게 의도적으로 만들어서 꼭 배우고 시험을 봐야하나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내 깡패같은 애인' 영화를 보고는 생각이 좀 달라졌다. 작가의 의도를, 영화가 뭔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 은근하게 느껴졌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는 재밌다고 입소문은 났는데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도 그렇지만 영화를 상영한다고 하더라도 자주 상영하는 것이 아니라 주말에도 하루에 몇 번 밖에 상영하지 않는다. 계속 보고는 싶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보지 못했다가 이번 주 겨우 시간을 맞췄다. 어렵게 보면서 이렇게 재밌는 영화가 왜 이렇게 작은 관에서 소리 소문없이 이렇게 조용하게 상영하는 것인가 싶은 의심이 들면서 영화가 의미하는 것이 그냥 깡패와 취업준비생의 얘기만 같지 않다는 소문에 동의하며 보게 됐음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으면서도 지방대라는 이유로 아무리 좋은 스펙을 가지고 있어도 번번히 서류 전형에서 미끄러지고 면접에 가더라도 질문조차 받지 못하는 비참한 20대를 볼 수 있었다. 88만원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뿐 그들이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지쳐가는지 왜 그들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왜 우리 사회에 대한 불만보다 지방대를 나온 자신의 잘못이라고 자책하게 만드는 이 시대가 어렵다고만 생각했지 뭐가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경제가 어려워서 취업하기 힘들다고만 생각했다. 왜 경제가 어려운지 왜 취업이 어려운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더랬다. 프랑스 젊은이들은 취업이 안된다고 데모를 하고 때려 부수기까지 한다는데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취업이 안되면 모두 지탓으로 돌린다. 너무 착하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뱉는 동철(박중훈)의 대사엔 가시가 숨어있음을 콕 찝어주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내 깡패같은 애인'은 지금 사회를 풍자하는 것 같으면서도 아무 생각없이 그냥 웃으며 보기엔 조금은 무겁다. 이야기가 그렇지 않나. 취업준비생과 3류도 안되는 깡패의 어설픈 사랑이라니..어떻게 그들이 가볍고 행복할 수 있겠는가. 보면서 많이 웃고 많이 우울했고 많이 깝깝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영화는 재밌다.
역시 박중훈이다! 싶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그는 3류도 안되는 건달같은 깡패로 츄리닝 차림에 건성건성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삶의 연륜같은 것이 묻어나고 뼈속까지 깡패는 아닌 괜찮은 남자다. 그렇다고 얽히고 싶지는 않지만 속은 참, 따뜻한 남자다. 그래도 여러 개의 별을 단 깡패가 미화되지도 그렇다고 신파도 아니다. 무엇보다 세상 무엇에도 건드렁할 것 같은 이 남자가 옆방 여자로 인해 변하거나 사랑이라고 포장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냥 물이 흘러가듯 그렇게 흘러간다. 너무 자연스러운 그들의 감정변화와 그에 못지 않은 이야기의 내공이 영화를 끝까지 가볍지는 않지만 그러면서도 생각하게 하는 게 참 좋다. 취업 준비생역의 정유미도 담백한 연기가 돋보인다. 취업해 지방에서 서울로 입성은 했으나 다니던 회사가 3개월 만에 부도나고 졸지에 백수가 되버린 얼치기 경력자다. 적어도 1년은 넘어야 경력이라고 쳐줄텐데 3개월 밖에 되지 않는 경력으로 경력자로 취업하기도 그렇다고 신입으로 취업하기도 힘든 그러면서도 스펙엔 그녀의 출신 대학이 매번 발목을 잡는다. 면접에서 희롱을 당하기도 하고 대놓고 무시를 당하기도 하고 말할 기회조차 없이 그녀는 그렇게 점점 힘들어져 간다. 편의점의 아르바이트로 겨우 먹고만 살 뿐 그녀에게 남은 희망은 점점 없어진다. 점점 지쳐가는 그녀를 너무 담담하게 정유미는 표현했고 그 담백함이 그녀의 우울함이나 절망을 더 절실하게 나타내는 듯 해 영화의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렇지만 그 무거움을 가볍게 후~날리지는 않지만 흐믓한 해피엔딩은 영화관을 나서는데 찝찝하지 않은 희망을 준다. 적어도 그들이 잘 살았다는 이야기는 이 시대의 절망하고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실낱같은 희망이 되길 진심으로 바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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