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닌데 멀쩡하게 잘나가는 스타의 자살소식은 아주 우울하다. 살고 죽는 것은 말 그대로 하늘의 뜻이 아닌가 싶은데 그들은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 어디 스타 뿐이겠는가. 스타가 아니어도 자살은 아주 흔해졌다. 부모의 잦은 싸움으로 힘들어 하던 조카 친구는 목을 맸고, 자신의 장애가 힘겨웠던 지인의 아들은 14층 아파트에서 뛰어 내렸고, 취업이 안되 고민하던 필자보다 한 살 어린 친척 동생도 목을 맸다. 벌써 필자의 주위에서만 해도 자살은 이제 너무 흔한 일이 되버렸다. 오죽 했으면 그들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겠는가 싶으면서도 저 세상으로 간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 보다는 그 사람의 자살로 인해 충격받은 아픔은 어떻게 회복이 불가하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가 아물고 그랬었지...하는 시간이 분명 오겠지만 친구의 죽음에 목놓아 울던 소지섭의 아픔은 그대로 전해지는 듯 그렇게 같이 아팠다.
살고 싶은데, 열심히 잘 살아 보겠다고 아둥바둥 하는 사람들이 생을 포기한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 오죽하면 천안함 사고때 그랬었다. 자살하려고 생각하는 저 사람들이랑 맞바꾸면 안될까...하면서 말이다. 화장실 가는 거랑 죽는 거는 대신해 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태어난 순서대로 저 세상에 가는 것도 아니다. 그 만큼 살고 죽는 것은 인간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인데 참,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 특히나 스타들의 죽음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바람직한 기럭지와 매일 거울을 보고 싶을 만큼 자체 발광인 그들이다. 겉으로 화려하고 속으로 어떻게 곪는지에 대해선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들보다 더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일반인이 더 많다. 스타가 되기 위한 사람들도 많고 스타를 꿈꾸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그들의 죽음이기에 그것도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기에 받는 충격은 남다르다.
사고로 또는 병이 원인인 스타들의 죽음은 안타깝다. 적어도 자살로 스스로의 목숨을 끊었다는 스타들에 대해 갖는 놀라움이나 충격은 없다. 같이 눈물 흘리며 같이 아파하며 기적이 일어나 회복됐으면 하고 같이 빌어줄 뿐이다. 안타깝게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간 스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안타까움, 저런 스타를 배우를 잃어서 아깝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하지만, 스스로 자살한 스타에 대해선 충격이 먼저 앞서고 도대체 왜 저런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을까 궁금해 하고 배신감마저 든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많은 팬들에 대한 배신이라고나 할까.
박용하의 자살은 원인이 불분명 했다. 제정적으로도 문제가 없었고 극진한 효자였던 그가 왜 자살을 했을까. 특별히 그가 출연한 드라마가 시청률이 저조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류스타로 일본에서도 인기를 누리던 그였는데 왜 그가 죽음을 선택했어야 했는가에 대해서 일반인은 궁금할 수 밖에 없었고 충격이었다. 그런 가운데 조용히 눈물 흘리며 박용하의 죽음을 누구보다 애통해하고 절절하게 슬퍼하는 스타가 한 명이 유독 눈에 띄었다. 장례비 일체를 전부 지불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킨 소지섭이 그다. '소지섭 같은 친구가 있습니까?' 한창 기사의 제목으로 사용됐다. 친구를 잃고 슬픔에 못 이기는 그를 보며 더 많이 울었다. 박용하의 영정사진보다 그를 보내기 안타까워하는 그의 모습에서 더 많이 울고 더 안타까웠다. 절친을 보내야 하는 그의 마음이, 그가 받았을 충격이 어떻게 이겨낼까 오히려 그가 더 걱정이 될 정도다.
한류스타 박용하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그를 애도하는 많은 스타들과 묵묵하게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한 소지섭 때문이라도 그의 마지막 길을 외롭지 않았다.
죽음 다음에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겠나 싶지만 그래도….그래도 말이다. 고인의 명복을 빌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