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다가 좋다 :: 파리가 무서워 모기약 반통을 분사한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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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가 좋다

아이를 출산하고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문화생활을 마음껏 즐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영화를 볼 때마다 공연을 볼 때마다 친정엄마네로, 언니네로 왔다갔다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우리 부부의 문화생활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도 적잖이 불편했다. 결국은 문화생활을 포기했다. 뿐인가 외식도 포기했다. 돌 지나고 스스로 걸어다니기 시작하면서 부터 아이는 여자아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왕성한 활동을 보였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은 탓에 음식점으로 음식을 먹으러 가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어수선한 시간이었다. 아이한테도, 우리 부부에게도 결코 행복한 시간일 수 없어 외식을 꺼리게 됐음이다. 외식은 아이가 세돌이 되가기 전부터 조금씩 가능해졌다. 집에서 시켜먹던 음식을 이제는 밖에 나가 먹을 수 있게 됐으니 그저 아이한테 감사했고 음식 맛을 음미할 수 있다는 것에 또 한번 감사했다. 하지만, 문화적인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아이가 너무 어려 놀이방에 맡기고 공연을 보러 가는 것도 걱정스러워 차마 하지 못했다. 그래도 1년에 한 두번씩은 민폐라고 생각하면서도 친정엄마나 언니의 도움을 받으며 그렇게 문화생활의 갈증을 풀었다.
보고 싶을 때 마음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은 분명 고통이다. 그 고통이 완전하게 해소된 것은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다. 초등학교 1학년때는 아이를 놀이방에 맡기도 영화를 보기도 했지만 그렇게까지 편하지는 않았다. 영화를 보는 동안 혹 놀이방에서 전화가 오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보기 일쑤였는데...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2학기부터는 집을 지키겠단다. Home alone 하겠다는 딸아이가 처음에는 아주 많이 불안하고 걱정 됐음이다. 하지만, 한 두번 반복되다 보니 불안한 마음도 걱정도 많이 없어졌고 영화쯤은  보고 싶을 때 보러갈 수 있게 됐다. 집에서 10분거리의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왔다갔다하면 보통 3시간 정도 아이가 혼자 집에 있는 건데 그 시간 동안 잘 있으니 점점 대담해져 그 정도 시간은 영화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혼자 놔두고 외출하는 것이 쉬워졌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니 혼자 놔두고 외출해도 크게 걱정이 되지 않는다. 그날은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아이를 혼자 집에 놔두고 외출했다. 친구들과 만난지 3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엄마!"
딸아이는 다급하다 못해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왜그래? 무슨일이야"
"거실에…벌레가…."
뭐라고 울면서 이야기를 하긴 하는데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제대로 똑바로 말해. 울지 말고…응?"
아이의 이야기를 간추리면 거실에 벌레가 출연한 모양인데 그 벌레를 향해 모기약을 분사했는데도 그 큰 벌레는 퍼덕이며 죽지 않았다면서 안방으로 자신의 방으로 도망다니는 모양이었다. 티비도 끄지 못하고 방에 들어왔는데 너무 무섭다고 엉엉 울었다. 그렇지 않아도 곤충이라면 질색하는 아이가 날아다니는 벌레가 들어왔으니 얼마나 놀랬겠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 모임이고 뭐고 택시를 타고 급하게 집으로 왔다.
아이는 자신의 방에서 꼼짝도 안하고 선풍기도 켜지 못하고 땀을 쪽빼고 찜질하는 듯 그렇게 무서움에 떨고 있었고 거실에 벌레가 있다는 곳을 가르키며 필자의 등뒤로 숨었다.
바퀴벌레부터 시작해 꽃매미까지 그냥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경기할 만큼 싫어하는 아이가 가르키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거실 바닥은 모기약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그 가운에 벌레의 시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머! 그 벌레는…….파리였다.

MS PowerPoint ClipArt

"파리잖아!"
"어? 파리? 아닌데 아까 천장에 날라다니는데 이따만했는데….파리네"
너무 기가막히고 황당해서 말이 안나왔다. 아이는 파리를 그것도 왕파리도 아니고 작은 파리를 보고  모기약 반통을 분사하며 난리법석을 부린 것이다. 아이를 혼자 놔두고 외출한 필자를 탓해야지 아이를 탓할 수 없어 황당해도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모기약으로 흥건한 거실 바닥을 닦아내고  파리 시체를 치웠다. 파리가 엄청나게 커보였다며 정말로 저렇게 작은 파리였냐고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딸아이를 보며 웃지도 울지도 못했음이다. 어찌되었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보통 인내와 노력을 요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가끔 이렇게 어이상실한 상황을 맞닥뜨리게도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곤충이 활개치는 여름이 끝나갈 때까지 외출은 불가한 것인지….좀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