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은 우리나라 귀신이 젤 무섭다는 편견을 깬 것은 역시 일본영화 링이었다. TV를 뚫고 나오던 앞으로 머리 쏟은 귀신은 그 이후로 많은 납량 특집극에서 페러디가 됐지만 볼 때마다 섬뜻하다. 꽤 오랜 시간 늦은 밤 혼자 TV보기 섬뜻할 정도로 그 충격은 오래갔다. 머리 풀어헤치고 피를 흘리지 않아도 다크써클이 판다처럼 되어 있는 귀신이 아니어도 으스스하고 긴장감에 맘 편하게 기대서 볼 수 없는 그런 영화의 무서움엔 귀신이 필요없는 듯 하다. 귀신이 없어도 충분히 으스스하고 섬찟한 그럴 수는 있는 것이다.
250만명 '이끼'의 소문은 뜬소문이 아니었다. 2시간 40분이란 어마한 런닝타임동안 마음 편하게 기대어 볼 수 없는 그런 긴장감이 이끼에는 있고 놀라운 반전에 극장안에 불이 켜지고도 잠깐은 멍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아차 싶은 기분이 들기까지 시간이 멈춘 듯 그렇게 마지막 반전은 강했다.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 반전에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올라가는 큼지막한 자막 '2010년 강우석 작품'이 꽤 인상깊었다. 강우석감독은 흥행 보증수표같은 감독이다. 그가 만든 영화치고 사람이 적게 든 영화는 그닥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공의 적 시리즈가 필자가 기억하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지루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아주 허당도 아닌 거기다 헛웃음이 아닌 터지는 웃음을 만들 줄 아는 깊이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그의 영화는 적어도 영화비가 아깝지 않은 감독임에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런 감독이 이끼를 만든다고 했을 때 강우석이 제대로 만들 수 있겠냐는 비판적인 댓글에도 시달렸던 그가 이렇게 제대로 웃음없이도 재미나게 2시간 40분이란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도대체 뭐가 있나 궁금해하고 그 궁금증이 풀리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아주 잘 만들었다. 보란듯이 이렇게 잘 만들었다고 영화가 끝나자 마자 '2010년 강우석 작품'이라는 자막이 화면의 가운데를 장식한 것이 아니겠는가. 인정!! 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꼭 깊이있는 못 알아 먹는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이렇게 몰입가능하고 충분히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대단한 감독의 역량이 아니겠는가 싶다.
특수분장만큼 좋았던 것은 대사 전달이다. 영화속 배우들의 현찮은 발음으로 자막처리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적이 얼마나 많은가. 드라마를 보면서도 영화를 보면서도 우리나라 배우가 우리나라 말을 사용하는데 도대체 뭐라는 거야 싶은 부정확한 발음을 가지고 있는 배우들의 홍수속에서 너무나 오랜만에 우리나라 말을 제대로 발음하는 배우들의 연기에 만족했다. 어찌나 발음이 정확한지 못 알아듣고 넘긴 대사가 하나도 없다. 그들은 모두 정확하게 그들의 대사를 전달했으며 그덕에 좀 더 이끼에 몰입할 수 있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이 칭찬하는 특수분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너무 자연스러워 정재영의 노년의 모습이 혹 저러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정재영을 위한 영화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만큼 정재영의 영화 전반을 어우르는 듯한 존재감에 너무 밋밋해 특별하지 않을 것 같지만 언제자 제 몫은 충실하다 못해 넘치게 해내는 박해일이란 배우, 그리고 스스로의 존재감을 찾는 유해진, 거기다 긴장해소에 약간씩 도움이 됐던 유준상까지 모두 훌륭하다. 속을 알 수 없는 이영지(유선)도 절대 미비하지 않다. 모든 이들이 그렇게 똘똘 뭉쳐 긴장감을 만들고 그들의 헛점 투성이 이야기에 힘을 실은 수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에 눈 크게 뜨고 따지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공감하고 몰입도 가능하고 마지막 반전에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기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끼'처럼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태클을 거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고 그 이야기가 만화를 원작으로 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면 굳이 이야기가 안될 것도 없다.
이미 알려진 이야기에 배우들의 존재감, 거기에 마지막 예기치 못했던 반전까지 더해져 '이끼'는 충분히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재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