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도 너무 덥다. 덥다고 찬 것만 먹었더니 속은 더부룩하고 안좋고 그렇다고 뜨거운 걸 먹자니 온 몸이 땀 범벅이니 먹는 것도 곤욕이다. 8월 중순이 넘었고 입추가 지났고 말복이 지났는데도 날은 여전히 뜨겁다. 이렇게 뜨거운데 방학이고 아이와 함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책에 빠지기는 쉽지 않는 듯 하다. 법정스님은 천고마비의 계절은 오히려 책을 읽기 나쁜 계절이라고 했다. 그도 일리가 있는 말씀이다.
너무 오랜 시간 책장을 지키고 있던 책을 하나 꺼내 들었다. 얇지만 간결하고 그러면서도 생각할 것이 많아지고 그러면서도 마음이 정화되는 듯한 내용이 좋은 법정스님의 '무소유' 다. 법정스님이 입적하고 한동안 '무소유'가 대단한 인기였다. 스님의 유언에 따라 다시 책을 출판하지 않는다는 기사에 많은 이들은 무소유를 소유하길 원했고 꽤 높은 가격으로 경매에 붙여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 책이 책장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 오랜 시간 잊고 있었다. '무소유'는 초판이 1976년이었다. 짧막한 글마다 몇 년도라는 것이 명시되어 있는데 그 시대가 1971년도 있고 1973년도 있다. 시대적으로 봤을 때 필자가 태어난 시점부터 두돌 지났을 때까지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그냥 산문처럼 쓴 글이다.
근데, 이 글이 그냥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두번, 세번 생각하게 할 뿐 아니라 곱씹어 읽어도 좋다. 분명 시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점이 아닌 40년전에 쓴 글인데 아직도 생각할 수 있는 글이라는 것이 그저 놀랍고 그분의 생각을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정화제로는 충분히 그 역할을 다할 듯 하다.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너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에서 사라져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깐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무소유 中에서)
스님은 난초 두 분을 정성스럽게 길렀다고 했다. 그애들을 위해 관계 서적을 구해다 읽고 건강을 위해 비료를 구하고 여름철이면 서늘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기고 겨울이면 그 애들을 위해 실내 온도를 내리곤 하면서 그렇게 정성을 다했다. 그러던 여름 장마가 갠 어느 날 스님이 외출했다 돌아오셨는데 그때서야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온 것이 생각났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잎이 눈에 아른거려 허둥지둥 돌아왔지만 잎이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이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 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념한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난을 가꾸면서 산철에도 나그네 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짝을 못했다. 밖에 볼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문을 조금 열어 놓아야 했고 , 분을 내놓은 채 나가다가 뒤미처 생각하고는 되돌아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었다(무소유 中에서)
며칠 후 스님은 친구에게 난을 안겨 주었다. 그런데 스님은 날아갈 듯 홀가분한 해방감. 3년 가까이 함께 지낸 '유정(有情)'을 떠나 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었단다. 그때부터 스님은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고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 했다.
세속적인 필자는 아직도 스님의 무소유에 대한 말씀보다는 소유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앞으로 하나씩 버리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아직 못한다. 스님의 무소유에 대한 생각을 이해하고 충분히 동감하면서도 아직은 그 말씀을 따르지 못하는 중생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겠다는 마음없이 그냥 편하게 펼쳐서 가볍게 읽기 좋다.
아이러니하게도 스님의 '무소유'는 소유하고 싶고 소장하고 싶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