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예전에는 그닥 매력없던 한복이 곱디 고은것이 어찌나 이쁜지 모르겠다.
이쁜 사람이 이쁘게 잘 차려입어서인지,어쩐지 암튼, 한복의 아름다운 맵시를 보는 재미도 남다르고, 생소한 내시들의 삶이 자세하게 소개된다는 것도 색다른 맛이 있다. 빠른 극 전개도 재미를 더한다.
내시가 그랬구나 싶기도 하고, 폐비윤씨로 등장할 구혜선의 독기없는 표정을 보면 투기로 사사까지 당한 여인네 역에 어울릴까 싶기도 하다.
역사란 해석하기에 따라 틀리지 않은가.
폭군으로만 알고 있던 연산군,광해군도 그렇게 폭군만이 다가 아니었다는, 정치적으로 뛰어났던 군주였다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던가.
어떤 시점에서 누가 쓰느냐에 따라 그 인물에 대한 평가가 틀려지는 것이다.
혜경궁 홍씨하면 사도세자의 부인, 세자빈으로 뒤주속에서 죽어가는 남편을 어쩌지 못했던 시대의 희생물로 알고 있던 한만은 여인인줄만 알았는데..
그녀가 사도세자의 반대편에서 그녀 아버지(홍봉한)와 합세해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여인이라는 해석을 본 후부터는 그 여인이 달리 보였다.
한중록에선 지아비를 잃은 슬픔을 한탄하는 것처럼 포장하면서 속내는 아버지 홍봉한을 옹호하고 그러면서 사도세자를 정신병자처럼 표현했다.
한중록은 슬픔과 한을 나타낸 글이라기엔 아버지를,친정의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냄새가 난다.
혜경궁 홍씨는 몇십년을 궁에 살면서 지아비를 보내고, 아들 정조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음에도 손자 순조가 즉위하자 홍씨가문의 신원을 회복하게 했다.
그렇게 살면서 그녀는 행복했을까?
(현릉원 행장 기록을 보면 사도세자는 홍씨의 기록과는 사뭇 다르게 영조에 대한 효가 깊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한결 같다 되어있습니다. 이렇게 두가지 기록이 상반된다.)
'왕과 나'의 폐비윤씨도 그렇다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질투가 심한 여인네로, 인수대비의 권력욕에 희생된 여인네로 보여진다.
윤씨는 투기가 심해 왕의 얼굴에 손톱으로 상처를 냈고 그로 인해 폐비가 됐고,그 후에 사사된 걸로 알고 있다.
왕의 용안에 상처를 냈으니 그 시대에 죽을 짓을 했구나 싶었는데 윤씨가 희생양이라는 거다.
여성편력이 대단했던 성종의 중전이었으니 그 속내에 투기가 없었다면 이상했겠지만, 그녀의 투기도 투기지만 그녀를 모해하려는 성종의 후궁들과 권력욕이 컸던 인수대비로 인해 폐비가 됐다는 거다.
이제껏 봐왔던 조선시대 사극을 종합해 볼 때 충분히 그럴 수 도 있을 듯 싶다.
(왜 지푸라기 인형에 바늘을 콕콕 찌르며 저주하는 장면같은거~~^^)
결국 인수대비도 연산군에 들이 받친 후 죽지 않은가. 인과응보란 말이 달리 나온 말이 아닌 듯 싶다.
새로 시작한 '왕과 나'의 윤씨는 가상의 인물 처선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사대부가의 여식으로 후궁으로 간택됐다가 합방을 거절해 중전이 됐다는 줄거리가 보이던데..
예고편에서는 윤씨의 질투보다는 성종의 질투가 돋보인다.
김처선
본관 전의(全義). 문종 때 영해로 유배되었다가, 단종 때 풀려나 직첩이 되돌려졌다. 1455년(단종 3) 정변에 관련되어 삭직·유배되고, 세조 때 복직되었다. 1460년(세조 6) 원종공신(原從功臣) 3등에 책록되었으나, 세조의 미움을 받아 자주 장형을 당하였다.
성종 때에는 의술을 알아 대비의 신병치료에 이바지하여 가자(加資)되고,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이르렀다. 연산군이 즉위하자 다시 시종에 임하였으나, 직언을 잘하여 미움을 받았다. 1505년 연산군이 스스로 창안한 처용희(處容戱)를 벌여 그 음란함이 극에 달하자, "이 늙은 신(臣)은 4대 임금을 섬겨 대략 서사(書史)에는 통하 나, 고금의 군왕으로 이토록 문란한 군왕은 없었소이다"라고 극간(極諫)하였다.
연산군에 의해 직접 다리와 혀가 잘려 죽고, 부모의 무덤까지 헐렸다. '처(處)'자 사용을 금하여 처용무(處容舞)를 풍두무(豊頭舞)로 고치기까지 하였다. 1506년(중종 1) 고향에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원본 위치:네이버 백과사전
사극은 나름의 해석에 약간의 픽션을 조미해야 재미있다.
내시가 그렇게까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왕과 나'를 보면서 첨 알았다.
거세한,그래서 2차성징이 이루어지지 않아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에 털이 많지 않게 된다.
'왕과 나'의 조치겸은 아주 멀쩡한, 하지만 수염 한가닥 삐져 나오지 않은 피부 좋은 내시로 나온다.
그 내시들이 결혼도 하고 양자로 자식까지 두면서 제대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니 재밌다.
그래도 그들이 안됐다.
내시들은 궁녀들 틈에서 일해야하는 것땜에, 제의적인 것땜에 고환뿐아니라 음경까지 거세를 했고, 요도만 확보해서 살아가게 했다니 무섭기까지 하다.
왕과 왕비,그 후궁들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꾸며져 왔던 사극이 진보하는 듯 하여 만족스럽다.
진보에 발 맞추기 위해 열심히 조선시대 책을 뒤적이고 있다.
누가 쓰느냐에 따라 그 시대의 해석이 틀리다는 것도 역사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