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아이 낳고도 부지런히 경제활동을 해보겠다고 열심히 아이를 친정 엄마네로 맡기면서 워킹맘이길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했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도 일을 계속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는 프리랜서이면서도 끊길 듯 끊기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걸 감사했다. 그렇게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했던 일이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뜸해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아예 일이 없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일을 하지 않으면서 전업 주부라는 단어를 직업란에 쓰는 것이 당연하지만 아직도 적응이 되진 않는다.
필자의 나이가 이제 마흔을 넘었다. 불혹의 나이를 넘기면 경제활동에 위협을 받는 이는 필자같은 주부가 아니어도 회사를 다니는 남자여도 마찬가지도 불안을 느끼는 나이긴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필자가 시간강사로 근무했던 대기업의 직원이었던 이사, 과장, 대리셨던 분들이 마흔 중반을 넘어서 근무하는 걸 보지 못했다. 뛰고 나는 능력을 가진 분들이 간혹 힘들게 볼 수 있었다. 거의가 계열사로 옮기는가 싶으면서 얼굴을 볼 수 없게 됐다. 그 중 한 대리님은 다단계 판매를 하며 필자에게 연락을 해왔다. 같이 해보지 않겠냐는 전화였다.
아무리 능력있고 대기업을 다녔다고 하더라고 다닐 때 모든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 사람의 능력을 인정 받는 것이다. 일단, 그 물을 벗어났을 댄 아무도 그가 전에 대기업을 다녔던 것에 대해서 그의 능력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저 '전'이라는 단어가 붙을 뿐이지 생계를 위해 다단계 판매를 하기 위해 시간강사한테까지 연락하는 그런 모양까지 되는 것이다.
필자의 입사 동기는 꽤 아주 잘나갔던 프리랜서였다. 재작년까지도 왕성하게 현역으로 근무했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도 전혀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았다. 골드 미스라는 호칭까지는 아니더라도 실버 미스는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녀는 준수한 싱글을 됐다. 자신을 위해 문화공연비를 지불하는 멋진 싱글의 모습은 문화공연에 할당하는 것은 9000원 영화가 몽땅인 필자에겐 선망의 대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가 작년부터 조금씩 일이 줄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내년에는 아르바이트라도 해야할 것 같다고 불안해 하며 그렇게 허리띠를 졸라매며 한해를 보냈는데...올해는 작년보다 일이 더 없다. 홀어머니와 함께 살아야 하는 그녀에겐 말 그대로 생계를 위해서 아르바이트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하루 열 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에도 여러 번 자괴감과 자멸감으로 화가 나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고 그렇단다. 여전히 능력도 있고 여전히 잘할 수 있는데 불러 주는 곳이 없는 것이 어찌 화가 나지 않겠는가.
할 수 있는데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는 많은 이들에 자신이 속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옆에서 지켜보기가 안타까울 정도다.
나이 마흔이 되면 은행의 잔고도 어느 정도는 쌓이고 일에서도 안정을 찾지 않을까 싶었는데...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린 사람들한테 치이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힘들어지고 그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불안해지는 것이 40대인 듯 하다. 기혼이든 미혼이든 앞으로 살아내야 할 시간은 많이 남았는데 벌써 경제생활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을 못하고 새로운 일을 해야한다는 것은 단순 노동직밖에 없는 그럼 당연히 지금까지 받았던 수입에 비해 초라할 수 밖에 없는 것인데…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