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다가 좋다 :: 초딩부모 담임선생님 전화를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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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가 좋다

아이를 처음 학교에 입학시키고 2주만에 담임 선생님 전화를 받았다.

요는 아이가 묻어가지 못하고 튄다는 것이었는데...초보 학부모로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몇날 몇일 밤잠을 설쳤는지 모른다.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서 담임 선생님이 그렇다는 둥, 학교라는 데가 원래 그렇다. 2주밖에 안됐는데 그런 전화를 하는 건 촌지를 요구하는 거다는 등의 주변 얘기가 위로가, 위안이 되지 않았다.
그룹에 묻혀가지 못한다는 것이 그렇게 엄청나게 잘못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내가 선생님이라면 아이들의 특성을, 개성을 인정해줄 수 있었을까. 장담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그룹속에 묶여서 절대 튀어서도 안 되는(흡사 두더지 게임 하는 것 같다. 튀어 오르는 두더지는 맞는!) 묻어가야 하는 우리의 교육현장이 바라보고 묻어가는 길을 안내해줘야 하는 학부모의 입장이, 아무것도 아이한테 해줄 수 없는 내가 무기력해 힘이 빠진다.

에디슨 엄마는 에디슨을 어떻게 키웠을까? 선생님이 포기하고 학교까지 자퇴한 아이를 어떻게 지혜롭게 총명하게 긍정적으로 키울 수 있었을까…
엄마가 그렇게 총명했기에 에디슨도 그렇게 위대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주위에 의외로 나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남들 속에서 남을 의식하며 사는 것이 세뇌처럼 되어 남들 다니는 학교에 다녀야 하고, 남들이 하는 것처럼 사회생활도 해야 하고, 남들처럼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사는 그런 평범한 삶을 포기할 수 없어 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속 끓이는 부모가 많다.

방송에서 보여주는 대안학교는 아이들의 천국 같지만 아이를 대안학교에 선뜻 맡길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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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지조 있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똑같이 남을 의식하는 삶을 살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편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내 아이한테 맡는 대안학교를 찾더라도 보내는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아이둘을 캐나다로 유학보냈다 1년 반만에 다시 돌아온 집이 있다.
1년반 동안 밖에 나가있던 시간때문에 고2때 떠났던 아이는 다시 고2학년을, 중3때 떠났던 아이는 다시 중3학년을 후배들과 같이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그 부모가 생각이 모 잘라서 아이를 캐나다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겠는가.
배울 만큼 배운 이들도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서는 정답이 없는 것이다.

풀리지 않는 풀 수 없는 문제 같다.
방법은 없지만 아이가 성공하면 그 엄마 아빠의 양육 방법, 교육방법은 이슈가 된다. 하지만, 우리아이가 그 집 아이가 아닌 이상 똑같은 양육방법도 교육방법도 그 아이만큼의 효과가 있을 거라는 보장은 못한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그 중에서 담임 선생님의 절대 권력아래 있어야 하는 6년 동안 아이들은 적어도 묻어 가는 걸 배우게 될 것이다.
필요한 지식은 학원에서 습득하고, 학교에서는 묻어가는, 튀지 않는 걸 배우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내 아이한테 맞는 가장 적절한 교육은 무엇인가, 찾았다면 적용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가 하는 거다.
우리 아이는 책을 좋아하는 데 그냥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관심을 두면 역사에 관련된 전집을 어른도 보기 어려운 깨알 같은 글씨만 있는 책도 읽고 또 읽을 수 있는데 단지, 반 친구들과의 관계 때문에, 집중하면 다른 사람이 말하는 걸 잘 못 듣는 것 때문에 선생님으로 하여금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야 할 때.. 엄마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학교에 아이를 맡긴 이상 아이가 볼모라 선생님한테 촌지는 갖다 주지 않더라고 물신 양면으로 노력하는 모습은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 손이 올라 갔을 때 그만큼 발표 횟수가 줄어들고 그만큼 선생님의 관심을 적게 받는 것이다. 지적을 당했음에도 개선되는 면이 보이지 않으면 그 아이는 그 선생님한테 그림자로 인식된다.
내 아이가 그림자로 인식되어 같은 교실에서 공부를 한다는 건 생각만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끔찍한 일이다. 분명 선생님이 되기 전에 학생 이었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이해가 부족한 선생님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뭐라 할말이 없다.

양육자 엄마로서의 위치가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을 존중해주고, 그 아이만의 특성을 이해해주면서 통솔 하는게 그렇게 힘든 일일까. 물론, 묻어가는 아이들만 있다면 통솔하기는 쉬우리라.

학부모로서 절실히 원하고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학교가 아이들한테 웃음을 줄 수 있는 그런 배움의 장소였음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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