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이 어떠했는지 전혀 모르는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비교 대상도 없었고 스포일러도 전혀 없는 백지상태에서 봤다. 아주 흥미롭게 그러면서 뭔지 모를 슬픔이 공존하는 그런 영화였다.
유인원인 침팬지에 대해서, 인간을 위해서 무수히 죽어간 실험용 쥐들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생각이란 걸 해봤을까.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을 위해 희생되어도 좋을 존재로 생각하진 않았을까.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은 인간에 대한 경고다. 인간의 탐욕이 불러낸 재앙이라고나 할까. 우리는 이미 아바타를 통해 우리 인간의 탐욕으로 어떻게 나비족을 아프게 했는지 알았다. 좀 더 잘살아 보려는 노력으로 다른 종족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나 좀 더 오래 잘 살아 보기 위한 노력은 유인원인 침팬지의 반란으로 만들었다.
영화는 아주 짜임새있다. 갑자기, 왜? 라는 뜬금없는 설정이 없다. 왜 침팬지 시저가 그래야만 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이야기는 아버지의 알츠하이머 치료약 개발을 위해 침팬지를 이용한 임상실험을 하는 과학자 윌(제임스 프랭코)은 실험에 이용된 한 침팬지의 새끼 시저(앤디 서키스)를 집으로 데려가 키우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윌과 가족이상의 정을 쌓은 시저가 윌의 아버지를 구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아닌 침팬지이기 때문에 보였던 폭력성으로 시저는 보호시설에 갖히게 되고 그러면서 윌과 이별하게 된다. 사살되지 않고 보호시설에 갇힌 것 만으로 감사해할 상황이었지만 너무 똑똑한 시저에게 그보다 더한 시련은 없었다. 침팬지가 어찌나 슬퍼보이는지 찔끔할 뻔했다. 자신을 침팬지 이상으로 보지 않는, 생각하는 침팬지라고 오히려 무시당하고 모욕당하며 보호시설에 있던 시저는 침팬지들을 뭉치게 하고 인간에 대적하기 위해 탈출을 감행한다.
그냥 줄거리를 쭉 적으면 나비족 대신 침팬지가 대신인 아바타의 변형같은 영화같은 냄새가 난다. 하지만, 영화는 아바타와 다르다. 아름다운 3D화면을 제공했던 아바타와 다르게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스펙터클하며 화려한 액션도 있다. 시저에 공감할 수 있는 묘한 슬픔과 인간과 공존하기엔 불편한 그렇고 그런 사이에서 윌의 아픔도 시저의 아픔도 같이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영화는 탄탄한 스토리만큼이나 눈을 뗄 수 없는 흡입력도 그러면서도 시저를 연기한 앤디 서키스란 배우에 대한 경의를 표하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