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하나씩 들고 다녔던(그때는 지금 아이들처럼 사물함이 없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언제나 가방 앞주머니에 상비약처럼 들고 다녔던 걸레..집에서 못쓰던 수건으로 엄마가 얼기설기 만들어 주셨던 딱지모양의 걸레말이다.
여자아이들 반은 앞 교탁 있는 그 바닥에 쭉~~벽(칠판쪽으로)을 보고 앉아서 열심히 열심히 왁스칠 해가면 반딱반딱 윤이 날 때까지 닦았다. 나머지 여자아이들 반은 뒤쪽(게시판이라고 해야하나? 아이들의 작품이 걸렸있던~)벽을 보고 바닥에 앉아 닦았다. 근데, 남자애들은 뭐했나? 아, 유리창에 매달려 유리창을 닦거나, 복도에서 대걸래들고 밀고 다니고 했던 것 같다.
그래도 힘덜쓰는 걸레질은 여자애들이 했었는데 나름 재밌었다. 애들끼리 앉아서 수다 떨수 있어 좋았고 그렇게 힘든 청소도 아니었다.
교실은 책상과 의자가 있는 가운데를 제외한 앞뒤의 마루바닥은 아주 맨들맨들 했었다.
그래서 그 맨들맨들한 교실바닥에 앉아 친구들과 공기놀이도 했었다. 손에 나무가시가 박힐 수도 있으니 언제나 조심조심 바닥을 훌터야했다는~~^^
그렇게 장학사가 학교에 뜬다면 학교 전체가 청소하느라 난리였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환경미화도 새롭게 시켰고, 교실에 똑같은 모양으로 걸려 있었던 커튼도 빨아와야했고, 화분도 몇개씩 새롭게 장만 해야 했다.
하지만 장학사가 우리 교실을 지나가는 시간을 아주 짧았다. 그 짧은 시간을 위해서 몇날 며칠을 쓸고 닦고 해야한다는 것이 어린 마음에도 반항심이 일었었다.
도대체 장학사가 뭔데?
내가 이제는 학부모가 되어 학교를 방문한다.
학교에 가방메고 공부하러 갈때랑은 사뭇 다른 기분이다.
처음 1학년 입학하고 한달도 채 안되서 공개수업 할때는 불안불안한 마음에 선생님께서 아이들의 작품을, 교실을 얼마나 정리정돈해 놓았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아이 뒤통수만 열심히 쳐다보며 혹 아이가 발표를 제대로 못할까 싶어, 엉뚱한 말을 할까 싶어 긴장도 됐었다. 강가에 내놓은 아이마냥 그렇게 좌불안석이었다. 그랬던 공개수업이었는데 3번째 공개수업인 어제는 마음이 아주 느긋해졌다.
아이들도 1학기때랑은 틀리게 많이 컸고, 학교에 적응해서일까 아이들이 다부져보였다. 어설프기 짝이 없던 그 아이들이 점점 학교에 익숙해진 것이다.
어찌나 뿌듯하던지 실실 웃음이 쪼개져 나왔다.
그러면서 여유가 생겨서일까..교실이 눈에 들어 왔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이 만국기처럼 걸려 있고, 한쪽에는 아이들이 만든 카드도 있고, 다른 한쪽엔 아이들의 파일이 눈에 띈다.
하나씩 살펴보면서 내 아이가 학교에 그냥 다니는 것이 아니구나. '색칠하느라 힘들었겠다', '글짓느라 힘들었겠다'는 생각부터 대견한 생각까지 교차했다.
그러면서 나의 어린시절-국민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공개수업을 하기 위해서 아이 담임 선생님 또한 얼마나 많이 며칠 전부터 수업준비며, 교실을 다듬어 왔을까 싶으니 나의 어린시절-국민학교때 장학사가 방문한다고 학교 전체가 난리 법석이었던 그 때가 생각이 났다.
학교 전체가 공개수업을 위해서 청소, 환경미화, 수업준비까지 얼마나 고생했을까에 생각에 미치며 아이들한테도, 담임선생님한테도 많이 감사했다.
내가 장학사는 아니지만 학교에 손님으로 방문해서 손님 대접을 받으니 썩~괜찮은 것이 예전 우리학교에 왔던 장학사도 그런 기분이었겠지?
세상 공짜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