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다가 좋다 :: 더 많이 아픈척 하는 우리 엄마, 웃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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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가 좋다

시할머니는 몇 년전 아흔이 넘은 연세로 돌아가셨다. 모두들 호상이라고 통곡도 없이 보내셨던 걸로 기억한다. 호상이라는 단어를 '그대를 사랑합니다'보고 이제는 쓰지 않겠다 생각했는데 그때는 암튼, 그랬다.
필자가 결혼하고 5년쯤 됐을 때 돌아가셨으니 그렇게 많이 뵙지는 못했다. 그런데 아주 독특한 취미를 기억한다.
당신 생신 때라든가 여러 사람이 모이는 명절 때는 꼭 구멍 난( 그런 속옷이 있었나 싶은데)  속옷을 입고 거실에 나오셨다. 겨울엔 구멍 난 헤진 내복, 여름에는 구멍 난 런닝을 입고 앉아 계셨다. 도대체 왜 저럴까 싶어 황당했다.
자식들, 손님들 오는데 좋은 옷을 입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필자는 도통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필자의 엄마가 칠순이 넘은 연세가 되고 시할머니와 같은 캐릭터가 됐다는데 많이 놀랬다.
엄마가 입원하셨다. 폐에 물이 찼다는 그닥 좋지 않은 증세로 입원을 했고 각종 검사를 하고 있는 중이라 정확하게 뭐가 원인인지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하는지도 아직 모르는 상태다. 입원 이틀째 병실에 갔을 때다.
병실엔 친척분들이 와 계셨다.
전날 1L의 물을 빼고 어느 정도 원기를 회복하고 식사도 잘 하시는 걸 봤는데 바로 다음 날 만난 엄마는 아주 많이 아파 보였다. 완전 환자모드였다. 혹시 회진 때 의사선생님께 안 좋은 말씀을 들었나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MS PowerPoint ClipArt


"엄마, 선생님이 뭐라셨는데.. 결과가 안좋데?"
"..."
엄마는 대답도 하지 않고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아파서 말도 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그런 태도로 다시 자리에 누웠다. 머리는 이곳 저곳 눌려 있었고 엄마는 최상의 아픈 환자 모습 그 자체였다.
몇 번의 질문 끝에 결론적으론 회진 때 선생님은 별말 없으셨고 3~4일에 걸쳐 물을 다 빼고 그리고 CT를 찍어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말씀만 반복하고 갔다고 했다. 별로 어려운 말도 아니었는데 엄마는 도대체 왜...이런 설정이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말을 아꼈고 많이 기운없고 힘들어 하는 듯 했다.
호텔보다 더 비싼 1인실에서 잠자리가 바뀌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환자들 때문에 잠들지 못하지는 않았을 밤이었을 것 같은데 도대체 엄마가 왜 저렇게까지 기운없고 힘든지 정말 어디가 심하게 고장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친척분들이 가고 엄마는 아주 바로 원기를 회복했다. 기운없고 힘들어 하며 친척분들이 병문안 올 때마다 '죽으면 오지..' 하는 하나 마나한 말씀을 하시지 않나 권하는 음료수조차도 거부하고 아픈 모습으로 일관했던 엄마였는데 친척분들이 몽땅 다녀간 다음엔 점심 식사도 제대로 하시고 완전히는 아니지만 원기를 회복했다. 아니, 정상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관을 삽입해 하루에 1L씩 물을 빼는 거 말고는 그 어떤 약도 그 어떤 주사도 없는 상태로 그냥 침대에 있는 것인데 특별히 더 아프고 더 힘들 것이 없을 것이라는 필자의 생각이 맞았다. 밥맛은 없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친척 분들한테 보여준 것 같은 그렇게 중환자 모드는 아닌 게 맞았다.
어찌되었건 도대체 왜 그런 설정이 필요했을까 싶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 관심을 받기 위한 것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늙으면 애가 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엄마한테 좀 더 살뜰한 딸이 되도록 신경을 더 써야 할 것 같은 반성도 되고 한편으로 웃음이 나기도 하고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