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는 벌써부터 귀성 행렬이 시작됐다고 하고, 인천공항은 해외로 나가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도대체 추석에 해외로 여행을, 아니 굳이 해외가 아니라도 좋다. 국내 여행이라도 추석에 갈 수 있는 집은 집안이 기독교집안이라 차례를 지내지 않기 때문인가? 저들은 차례를 안지내도 어른들이 뭐라고 하지 않는가? 추석이 뭐하는 날이지? 내가 죽기 전에 추석때, 설때 여행갈 수 있으려나? 하고 혼자말을 하는데 옆에 있던 딸아이(초등1년)가 말한다.
'추석은 추석빔을 입고 차례를 지내고, 송편을 먹고, 달맞이를 하러 가는 날이야'라고 학교에서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걸 똘똘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랬구나..추석이 뭐 하는 날인지 잊고 있었다.
결혼전에는 야무진 꿈도 가졌었다.
TV에서 보여지는 추석풍경은 모든 식구들이 아름드리 차려 입은 한복을 입고 차례를 지내는, 식구들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고, 달맞이까지…
나도 나중에 결혼하면 아이까지 더불어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시댁을 방문하고, 친정을 방문할 수 있는 줄만 알았다니 참,,나도 멍청했다.
결혼하고 그 해 처음 추석을 맞았다. 물론,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새댁이니 당연히 한복을 챙겨서 시댁에 추석이브에 갔다.
하지만 한복을 입을 일은 없었다.
가자마자 일복으로 갈아입고 기름 냄새에 후라이팬을 거울 삼아 몇시간을 앉아 있는 건 전반전이다. 전반전을 마친 나는 온몸이 기름튄 자국에 머리를 움직일 때마 내 기름냄새에 질식할 지경이 됐다. 뻑쩍지근한 다리는 펴며 뒷설겆이로 마무리를 할 즈음에 후반전 송편을 빚기 위한 익반죽과 송편소가 준비되어 있었다. 가족들이 둘러 앉아 송편 만드는 걸 즐거워 하는 듯한 TV의 추석 풍경은 절대 만들어 지지 않았다. '어서 빨리 만들고 쉬어야지'하는 맘에 대화는 커녕 입을 꾹 다물고 기계처럼 하나하나 만들어 가면 익반죽이 줄어드는 걸 체크하는데 신경이 곤두서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추석이브를 음식준비로 바빴으니 추석 차례 지낼 때는 TV에 나오는 추석풍경이 되려나?
추석날은 새벽같이 일어나 차례상 준비를 하고, 차례를 지냈지만 어디까지나 여자들은 부엌대기조였다. 더 이상 튀어 나올 수 없는 츄리닝 바지에 앞치마를 두르고 차례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치우고, 밥상차리고, 치우고, 후식에 차까지 내가고, 다시 치우고….
한복은 입을 짬은 전혀 없었다. 세수한 것도 대단한 부지런함이었는데 언제 화장을 할 것이며, 츄리닝에 앞치마 두르고 화장을 하면 누가 봐주겠는가..
그렇게 나는 추석이라는 명절을 잊고 살았다.
추석연휴가 며칠이라는 거는 관심이 없었고, 단지 시어머니가 '올해는 힘들어 송편을 떡집에서 사기로 했다'는 말씀에만 관심이 기울어졌다.
며느리에게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추석이 만들어지기는 어려울 듯 하다.
우리 딸아이가 커서 며느리라는 이름표를 달게 됐을 때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을 듯 싶다. 명절을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으로 바꾸긴 진정 어려운 것일까?
올해 시댁에 갈 때도 나는 가장 허름한 츄리닝바지를 먼저 챙길 것이다.
노동보다 더 무서운 언어폭력(?)도 추석이면 아니 명절이면 빠지지 않는다.
추석을 지내고 오면 피곤한 몸보다 마음에 받은 상처로 더 많이 아프다.
피곤한 몸은 며칠이면 회복되지만 마음에 받은 상처는 한달은 기본이고, 명절때마다 되새김되 생각난다.
추석이 가까워 오면서 노동은 참을 수 있지만 '시'자 들어가는 사람들의 말한마디에 더 상처를 받는 다는 것은 누구나 다 겪는 일인 듯 하다. 남들도 그러고 산다고 해도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남떡이 커보이는 것처럼 내가 들은 말이 더 아프고 뼈저리기 때문이다.
비단 결혼한 사람만이겠는가? 취직 못해서, 결혼이 늦어서, 결혼했는데 아이가 안생겨, 하나만 낳으면 왜 하나만 낳느냐는 그런 해결해 줄 수 없는 무책임한 말에 우리는 상처 받는다.
올 추석은 덜 상처받고, 일하고 올 수 있는 그런 명절이길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