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모 삼천지교'란 말이 있다. 맹자의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3번을 이사를 했다는데 나는 우리 아이를 위해서 뭘하고 있나.
가끔 나한테 묻곤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아이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최선일까.
오늘 신문엔 외동이나 늦등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내 아이 친구 만들어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엄마들의 이야기가 실렸다. 나도 외동을 키우는 엄마로서 주의 깊게 기사를 끝까지 살펴봤지만 그렇게 동감할 수는 없었다. 아이들마다 스케줄이 틀려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시간 맞춰 놀기가 어렵다. 학원에 다니는 아이끼리 잠깐잠깐 노는 것이 전부지, 시간 잡아 친구집에 놀러가는 건 우리아이 친구 엄마도, 나도 조심스럽다. 친구집에 놀러 갔는데 그 집 아이가 숙제를 다 못했다거나, 집에 놀러 오는 걸 반겨하지 않는 엄마일 수도 있어 내 아이가 다른 집에 놀러가는 것보다는 우리집에 친구랑 와서 노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그렇지만 우리집에 아이 친구가 와서 노는 경우는 일주일에 한두번정도도 힘들다. 그만큼 요새 아이들이 바뻐 시간 맞추기 어렵다.
신문 기사에는 친구를 만들기 위해 다른 친구집의 초인종을 누르지만 반겨 하지 않는다는, 일주일에 한번만 놀자는, 같이 어울려 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럼 엄마들 때문에 아이의 친구 만들어주기도 쉽지 않단다.
적극적으로 아이의 친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언제까지 가능할까?
나도 개인적으로 아이가 외동이기 때문에 아이와 같이 놀 수 있는 친구가 많았음 싶고,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모든 사람들의 스케줄이 나와,우리 딸아이와 맞추긴 어렵다.
많은 대다수의 아이들이 학교를 다닌다. 초등학교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다수의 아이들과 틀리게 아주 소수의 아이들의 학교교육에 염증 내지는 적응 하지 못해 대안학교를 다닌다.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기 전에 '대안학교' 라는 것에 꽤 매력을 느꼈었다. 하지만, 남과 조금이라도 틀린 것을 제대로 봐주지 않는 사회적 편견에 엄마로서 이겨낼 자신이 없는 소심한 엄마인 나는 깨끗이 미련을 버렸다. 그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그래도 낫다. 아예 자퇴를 하고 학교가 아닌 집에서 공부하는 아이들도 있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아닌 소수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여서 그랬을까? TV에서 그런 아이들을 보여준 적이 있다. 꼭 학교를 다녀야만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공부하는 아이들도 있다라는 걸 보여준 취지였겠지만 그 아이들은 행복해 보였다. 교복을 입지 않아서, 학교에 메이지 않아서라기 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좋아 보였다.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사회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되지는 않으세요?" 라는 기자의 질문에 홈스쿨링하는 엄마의 대답은 " 학교에 다닌다고 사회성이 좋아진다는 말에는 동의 할 수 없어요.
요즘 학교 다니는 아이를 지치게 공부하는데 반에서 친구들이랑 제대로 이야기할 시간이나 있나요? 우리 아이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랑 같은 있지는 않지만 우리 아이는 보다 더 광범위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요. 더 사회성이 좋지 않을까요?" 한다.
맞는 말 아닌가? 평범하게 학교를 다닌 나의 경우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아침 일찍 등교해 아침자율학습을 시작으로 6~7교시나 되는 학과 시간이 끝나면 보충수업, 그리고 야간자율학습까지. 아이들과 대화를 섞을 시간도 제대로 없었다. 매점갈 때, 같이 도시락 먹을 때 말고 다른 아이를 이해하고 배려할 만한 시간도 없었다. 경쟁속에서 그렇게 하루를 채우듯 보냈는데 사회성이 좋아졌을까 의문이다.
이숙 한국아동가족상담센터 소장도 " 단순히 친구 하나 더 만드는 것뿐 아니라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능력을 키워 주는 게 주 목적이 돼야 한다." 고 말했다.(출처: 중앙일보)
엄마가 똑똑해야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는 말은 틀림없는 것 같다.
친구까지 엄마가 만들어줘야 하다니… 엄마는 원더우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