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데다 퇴근길의 종로는 차량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복잡하다.
그 복잡한 종로 3가에서 2가쪽으로 가고 있었다. 뒷자석에는 8살 딸아이를 태우고 운전중이었는데 옆차선의 차량이 내 차를 보지 못한 듯 차선을 바꾸려다 내 차 운전석 뒷부분을 받았다. 차가 쿵하며 흔들렸지만 그렇게 큰 충격은 아니었다. 상대방 차량의 운전자는 나이가 좀 있으신 여성이었는데 그 분은 버스 전용 차선있는 곳에 대고 이야기하자고 하더니 그냥 가버렸다.
어? 그래도 듣고, 본것은 있어서 차량 번호를 외워뒀다. 숫자 4자리와 번호판 색상이 노랑색이라는 거 까지 봤는데 잠깐 사이에 봉고차가 차량들 물결에 휩쓸려 사라졌다.
아이는 차에 타고 있고,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뺑소니 차량은 잡아야겠고 급한 마음에 종로2가 파고다공원까지 뛰어 갔다왔지만 경찰차만 보일 뿐 경찰은 없었다.
당황한 마음에 112로 전화해 상황을 설명하고 내가 외운 차량의 번호까지 이야기했다. "지금 있는 곳이 어디냐, 경찰을 보내겠다, 얼마 못 갔을테니 금방 잡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에 안심하며 경찰을 기다렸다.
아이와 나는 버스전용 차선에 비상깜빡이를 켜고 복잡한 버스전용차선에서 불안해하며 10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렸다. 15분정도의 시간을 기다렸을까? 경찰 2분이 오셨는데 경찰서에 가서 조서를 써야만 상대차량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복잡한 시간에 종로경찰서로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을까 싶기도 하고, 아까 112로 신고했을 때 바로 잡는다고 하던데 아니냐했더니 조서를 써야만 조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잡고 싶지 않으면 굳이 경찰서에 가지 않아도 되고, 잡고 싶으면 꼭 써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서에 도착해 설명을 하고, 조서를 썼다. 이번엔 보험회사에서 직원이 나와 다시 또 설명했다. 112에 신고할 때부터 내가 사고를 접수하기까지 오는 사람들한테 각각 다시 설명을 해야했다. 사고이후 경찰서에서 조서를 쓰고 나온 시간까지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상대차량을 잡으면 다시 경찰서에 나와 줘야 한다는 말을 듣고 경찰서를 나섰다. 아이와 나에게 사고이후 2시간은 악몽같았다.
며칠 후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상대 가해 차량을 잡았다는 것이다. 경찰관의 감으로 같은 번호의 수많은 차량 중에서 찍었는데 그 중에 가해 차량이 있었다면서 "나 잘했지!~"하는 식의 경찰태도는 상당히 별로였다. 내가 분명 가해 차량이 도망가자마자 112에 신고를 했는데 그때 바로 잡았다면 이렇게 몇번씩 경찰서에 왔다갔다 하는 일도 없었을 것 아닌가 싶은 것이 씁쓸했다.
경찰서에서 상대차량 운전자를 만났지만 그 나이많은 여성 운전자는 끝까지 자기는 정차하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아서 그냥 갔다는, 멀리 앞서가서 서 있었다느니 하면서 변명만 늘어 놓았다.
그러자 경찰의 직급이 좀 있는 듯한 분이 중재를 하는데 "범퍼 쪽에 그닥 심하게 파손되지도 않았는데 굳이 갈필요가 있겠느냐. 그건 국가적인 낭비다. 타다가 나중에 더 심하게 파손되면 그때 갈아라. 여기 아주머니랑 적당히 합의하라" 가 끝이었다.
보험사도 그 어떤 가해차량의 보험회사에서 알아서 보상 받아라하는 태도로 일관할 뿐 문제 생기면 전화달라는 아주 형식적인 답변외에는 나를 위해 말한마디 섞어 주지 않았다. TV광고에 나오는 다 알아서 해주는 그들은 어디있단 말인가!!
어찌되었건 경찰로 인해 그 가해차량을 잡았고 범퍼값을 배상받았다.
경찰의 신속한 대응만 있었더라면, 좀 더 내일처럼 처리해줬더라면 이렇게 경찰서에 몇번씩 드나들며, 몇번씩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경찰서를 드나들며 알게 된 상식이 있다. 가해차량을 "뺑소니"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에 경찰서에 들어가 '뺑소니'란 단어를 썼더니 경찰관의 지적이 바로 들어왔다.
재물훼손죄에 속한다는 것이다. 뺑소니는 인명사고나 자기재산에 가치를 떨어질 경우에만 사용한다나?
하지만, 사전적인 의미로 뺑소니는 '몸을 빼쳐서 급히 몰래 달아나는 짓'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사전적인 의미로 가해차량은 뺑소니 아닌가?
죄를 짓지 않아도 경찰앞에서면 괜히 작아진다. 신호 잘 지키고 운전해도 저기 경찰이 보이면 괜히 뭔가 잘못했나 싶어 주눅 드는 것이 운전자의 심리 아닌가.
나는 그렇다. 운전한지 10년이 넘었어도 저쪽에 경찰이 있으면 안전띠는 맸나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이번 사고로 확실하게 알게 된것은 112에 신고를 해도 조서를 써야만 모든 수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꼭 조서를 써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