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개학했다. 앞으로 10일정도만 다니면 다시 봄방학이다.
거의 모든 진도가 나간 상태이고, 특별하게 학교에 나가 배울 것도 없어 보이는데 굳이 10일은 왜 쪼개서 나갔다가 다시 봄방학이란 타이틀로 며칠을 쉬어야 하는지 애매한 2월이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처음 등교한 날 아이는 학교에서 학부모 설문지라는 것을 가져왔다. 설문지는 A4용지 2장 정도되는 분량으로 빽빽하게 질문이 들어가 있는데 앞으로 학교가 어떻게 운영을 하는 것이 학생이나, 학부모님들께 좋을지 조사를 해서 좋은, 발전될 방향으로 학교 운영을 이끌어 가겠다는 좋은 취지의 설문이었다. 거기다 무기명이다.
아이 이름을 적고 해갔던 지금까지의 설문 조사에 비해 이름을 적지 않고 한다는 것에 힘을 얻어 사실적으로 열심히 체크해나갔다.
마지막 질문은 학교에 바라고 싶은, 개선했으면 좋겠다는 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적어달라고 되어 있었다. 순간 볼펜을 들고 많이 망설였다. 무기명인데?? 하는 마음에 주절이 주절이 공란을 채워나갔다.
그러고 제출했는데 하교길 학교앞에서 만난 반엄마들은 많이 망설이다가 결국은 적지 않았단다. 무기명인데 뭘 그러냐면서 소심하기는 하면서 무심코 넘겼다.
그러고 설문지에 대한 생각을 까맣게 잊어버렸는데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딸아이 말이 설문지를 번호 순서대로 걷었단다.
그렇다면 무기명일 뿐이지 설문지의 주인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지 않은가.
이런,,,반엄마들의 소심함을 내심 가벼이 넘겼건만 이렇게 내게 큰 짐으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주위 학부모인 지인들은 선생님께 엄마로써 하고 싶은 말을 반도 못한다. 왜 저렇게 전전긍긍할까 싶었다. 내가 학부모가 되기전에는…
하지만 학부모가 된 지금은 100%이해한다. 말을 못해서가 아니라 내 아이가 교실에서 그림자 취급을 받지는 않을까,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싶은 노파심에 감히 선생님의 비위를 건드릴 만한 말은 하지도 못하고 할 생각도 접게 됐다.
가끔 뉴스에서 선생님을 폭행했다는 간큰 학부모를 만나면 희열을 느낄 때도 있다.
그 입장이 되지 않으면 완전한 절대적인 이해란 없다.
내가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이가진 엄마들의 행동들, 이를테면 아무데서나 아이 바지 내리고 소변을 보게한다던가, 백화점에서 누워 떼쓰는 아이를 절대 이해하지도 못했고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시집가 애를 낳봐야 친정 엄마를 이해한다', '애를 낳봐야 애를 이해한다' 같이 어른들이 하는 말씀이 딱 들어맞는 것처럼 내가 학부모가 되니 선생님앞에서 한없이 작아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그런 내가 무기명만 믿고 맘에 있는 말을 이건 이래서 맘에 안드니 이렇게 개선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평소 부드러운 문장과는 거리가 멀게 날카롭게까지는 아니지만 주절이 주절이 써 보냈으니 얼마나 큰일인가!
그래도 이제 며칠만 나가면 봄방학이고 그러면 지금 담임선생님과 빠이빠이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하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선생님들끼리는 정보를 공유해 누구 엄마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고가 아이의 꼬리표처럼 쭉 쫓아다닌다고 하던데...루머였음 좋겠다.
이 땅의 학부모로 살아간다는 것이 참, 여러가지로 피곤하다.
엄청난 사교육비에 찌들면서도 아이가 교실에서 절대 권력자 선생님께 그림자 취급을 받지는 않을까 싶어 말한마디로 맘대로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무기명 설문지면 무기명 설문지답게 마구잡이로 겉어야 하지 않았을까…소심증 도졌다.
아, 이제 며칠만 견디면 봄방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