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때 친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엄마, 큰어머니, 고모들이 곡했던 그 모습이 어름풋이 기억날 뿐 커서 장례식장에 가본적은 이제껏 4번이다.
처음 장례식장엔 6년전에 갔었다. 과로사로 갑자기 돌아가신 외삼촌의 장례식장이었다.
50도 안된 나이의 외삼촌이 돌아가셨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막상 장례식장에서 영정사진을 보니 삼촌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실감이 나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젋은 외숙모와 어린 외사촌동생들을 보면서 많이 슬퍼했다.
근데, 장례식장에 슬픔만 있는 건 아니었다.
향을 피우고 절하고 외숙모랑 한참을 슬피 울다 나왔는데 동생을 먼저 보낸 지친 엄마가 우리 남매를 기다리고 계셨다.
"지금, 떡 왔는데..가서 떡 먹자"
"응….?"
장례식장이라는 것이 마냥 슬퍼하고 고인을 기리는 그런 장소로만 미루워 짐작했던 나에겐 충격이었다. 삼촌은 가고 없는데, 떡 먹자니….
하지만, 장례식장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슬피 울다가, 밥먹고, 많은 사람들이 복작되고, 한쪽에서는 화토치고 술먹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웃기도 하는 곳이 장례식장이었다.
장례식장엔 육개장이 있다
특별히 입 맛나는 장소가 아니니 깔깔한 입맛에 어떻게든 먹어야 하는 상주나 그 외 손님들을 위해서일까. 얼큰한 육개장이 기본 국이다. 3일 연속 먹기는 곤욕이지만 2끼까지는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하지만, 장례식장을 벗어나면 당분간 육개장은 쳐다 보기도 싫다.
반찬엔 고추가루가 팍팍 들어간다
고추조림도 고추가루 팍팍 넣었고, 콩나물도 고추가루 팍팍이다. 얼큰하고 자극적인 맛이 장례식장의 반찬엔 있다.
눌린 돼지 머리 고기가 있다
새우젓에 찍어 먹는 직사각형의 머릿고기가 있다. 차갑게 보관하는데 기름기가 감기지도 않고, 냄새도 심하지 않은 것이 맛좋다.
오이, 무, 미나리와 어울어진 새콤달콤 홍어무침도 있다
술안주로도 그만이고, 매운데다 새콤달콤해 한참 울고도 먹을 수 있다.
유사상표 각종 음료수가 있다
'비타500'이 아닌 '비타1500'같은 유사상표의 음료수가 다양하다. 홍삼, 복분자, 술마시고 먹는 숙취해소 음료까지..휴지는 '모나리자'가 아니라 '모나리지'다.
지금껏 장례식장에 4번 가봤다. 1번은 제외한 나머지 3번은 전부 상주의 가족으로서 3일 내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음식을 나르고, 치우고, 상복까지 입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사람들은 호상이든 악상이든 간에 상관없이 꺼이꺼이 울며 슬퍼하다가도 차려준 밥 한그릇 다 비운다.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혼령이 그 모습을 본다면 어떨까...
나는 죽어 저기에 없는데 저들은 여전히 먹고 떠드는구나 싶어 이승에 정을 떼려나?
아무리 상주라고 해도 3일동안 슬퍼만할 수는 없으리라. 많은 손님이 와줘야 좋고, 시끌벅쩍한 분위기속에서 밤새 떠들고 술마시고 엄숙한 분위기는 그닥 없다. 그렇게 정신없이 3일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상주가 느낄 빈자리는, 그로 인한 슬픔을 그의 몫일 것이다. 상치르는 동안 3일동안이라도 슬픔을 덜 느끼도록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몇번 초상을 봤다고 나도 이제는 그곳의 분위기를 탄다.
그래서 그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고 간사람은 간사람이고 산사람은 산다고...
제대로 잠도 못자고, 씻지고 못하고 그렇게 3일째 되는 날 우리의 가족이었던 한사람을 떠나보낸다.
죽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아웅다웅하며 사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바로 장례식장에서다.
오늘도 산부인과에서는 새생명이 태어나고 있을 것이고, 어디선가는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뿐만아니라 마지막 가는길 화장터에는 새벽부터 많은 사람들이 순번을 기다리고 많은 슬픔이 함께 한다.
장례를 치르고 오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인생의 덧없음에 많이 허탈해하기도 하지만 내가 얼마를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살아야 죽어서 욕먹지 않고 많은 이들한테 기억될 수 있을까 고민도 하게 되고,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도 한다.
내일 내가 죽는다면 오늘 난 뭘해야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