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도 떼지 못한 아이한테 영어 테이프를, 영어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 것 자체를 극성스런 엄마라 치부했던 나다.
아이가 "엄마, 나는 왜 학습지 안해?" 할 때 한글을 떼주기 위해 학습지를 시작했고, "엄마, 나는 수학 안해?" 할 때 수학 학습지도 시작했다.
그 전에 내가 먼저 아이한테 들이대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를 위해 책을 읽어주고, 많이 보여주려고만 했지 굳이 발음도 현찮은 아이한테 한글을 깨치기 위해 노력한다거나 아이를 위해 영어테이프를 틀어놓는 짓은 하지 않았다.
때가 되면 하리라는 생각처럼 아이는 필요할 때 한글 깨치기를 원했고, 수학도 아이가 원할 때 나는 해줬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나만의 착각이었나 싶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제일 처음 내 절망은 영어였다.
돈들여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엄마들을 보고 극성스럽다고, 저래도 초등학교 가면 다 똑같은데 왜 저렇게 돈을 쓰지 못해 안달일까 싶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아이는 1학년 영어수업에 적응하지 못했다.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에서 일주일에 2~3번씩 했던 영어수업으로는 어림도 없었던듯 영어 수업 진도는 알파벳 A를 배우는데 수업이 영어로 진행됐다.
그때부터 아이는 조금씩 자신감을 잃었고 일주일에 2번 있는 영어 시간을 즐겨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영어유치원을 나온 친구들에 비해 말수가 적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을 견뎌하지 못했다.
그래서 영어학원에 부랴부랴 보내게 되었다. 언어라는 것이 학원에 보낸다고 바로 반짝하는 실력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궁여지책으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이의 자신감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원어민 선생님께 전하지 못하자 영어 유치원을 나온 아이한테 부탁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한다는 아이의 말에 엄마인 나는 한숨이 나왔다.
영어학원에 다닌지 이제 7개월째인 딸아이는 영어몰입수업에 어느정도 적응이 됐을 뿐 엄마인 내가 봤을 때 그닥 실력이 늘었다고는 할 수 없다.
어찌되었건 그렇게 영어는 해결했다고 엄마로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는데 복병은 여러곳에 숨어 있었다.
일기다.
일기가 문제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딸아이의 일기쓰는 실력, 다시말해 글짓기하는 실력은 엄마가 봤을 때 2학년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평범한 짓기능력이다.
그런데 유난히 반아이들 중에 글을 잘 쓰는 아이들이 눈에 띄고 아이의 입을 통해서 누구는 어떻게 일기를 쓰고, 누구는 어쨌다는 그래서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는 들었다.
글을 잘 짓는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능력이 남다른가 싶었다. 책을 많이 읽는가 싶기도 했었고 나름 추측했는데...그것이 아니란다.
글짓기 수업을 2년 이상, 적어도 1년 이상 들은 아이들이 선생님께 칭찬 샤워를 받는다는 것이다.
딸아이처럼 책만 읽은 아이들이 짓는 글이라는 것이 다 비슷비슷한데, 글짓기나 논술 수업을 받은 아이들은 기승전결이 확실한 글짓기로 선생님이 봤을 때 논리적이면서도 그 나이의 아이가 지었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짜임새 있는 글솜씨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반 아이들 모두가 딸아이처럼 글짓기나 논술 수업을 받지 않은 아이들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누구는 수업을 받고 누구는 맨땅에 헤딩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수업을 받은 아이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 밖에 없는 것 아니겠나..
딸아이가 2학년이다.
저학년때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판단하는 건 아이가 글씨를 잘 쓰는지, 아이가 책을 많이 읽는지, 일기를 잘 쓰는지, 받아쓰기를 잘 하는지...그런거 말고는 특별하게 아이를 판가름할 근거가 없지 않나. 그러니 미술학원에도, 논술이나 글짓기 수업을 받지 않은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좀 뒤쳐지는 아이로 보일 수 밖에 없는 것 아니겠나..
아이 스스로도 버거워한다. 같이 배우고 글을 지어도, 같이 배우고 만들고 그려도 다른 아이들보다 덜하다는 것은 아이 스스로 더 먼저 느낀다.
그러면서 자신감을 잃고 자신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의기소침해지는 듯하다.
뭐,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잘하는 아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비슷비슷한 능력의 아이들 틈에서는 당연히 선행학습이 이루어진 아이들이 눈에 뛰지 않겠는가...
조기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나 싶을 만큼 많이 혼란스럽다.
조기교육 필요악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