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00엄마다.
결혼하면 여자의 이름은 묻히고 누구의 아내로 누구의 엄마로 살다 보면 이름을 잊어 버린다는 말을 어른들께 많이 들었다.
결혼하고 어떤 서류를 준비하든간에 내 이름보다는 남편의 이름을 대야하는 경우가 더 많고, 하다못해 집으로 수리하러 오는 아저씨, 아파트 관리실 아저씨부터 " 이 집 아저씨는요?" 가 먼저 하는 말이라 결혼안하고 혼자살면 이럴때 뭐라고 답하나 싶기도 했다. 나 참, 내가 결혼전에는 우리아빠 이름으로 살았던가?
결혼하고 제일 적응 안되는 것이었다. 뭐든 나라는 사람의 이름보다는 남편의 이름이 필요했다.
아, 시댁에서는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 "아가"같은 며느리한테 통상 붙는 호칭대신에 "00야"라고..
그러던 것이 아이를 낳고 8년을 살아오면서는 누구의 엄마로 더 많이 불리었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아이 반 친구들 엄마들과 말한두마씩 거들다 친해지면서 같이 만나 점심도 먹는 경우가 생겼는데..그렇게 모이지만 엄마들의 이름을 모른다.
8명의 나이도, 키도, 몸무게도 다 다르고, 출신학교도 다 다르지만 같은 학년의 아이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대화거리는 내 친구들보다 더 많았고, 날 샐 수도 있을 만큼 끊이지 않았다.
친구라는 것이 학교졸업하고 각자 사회생활하고, 결혼해 가까이 살지 않다보니 1년에 4번 만나는 것도 어렵고, 결혼도 비슷한 시기에 안하고 몇년씩 차이나게 뜨문뜨문했더니 아이들의 나이도 다 달라 아이들이 친구처럼 지내는 것도 어려우니 같은 또래의 엄마들이 더 할말이 많고, 통화할 일도, 만날 일도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중요한건 00엄마로 만나게 된 사이다보니 아이의 이름이 곧 내 이름인 것이다.
"아, 00엄마!"
"00야"
그때는 몰랐다. 아무렇지도 않게 "00엄마"라는 호칭을 나도 사용했고, 내 이름이 그렇게 묻혀져가고 있는지 느낌도 없었다.
근데, 엄마들 모임 장소를 내가 잡고 예약을 하면서 문제가 야기됐다.
아무렇지도 않게 예약을 내 이름으로 하고 몇날 몇시에 어디서 보겠다는 문자를 돌리고 내 할일 다했다고 뿌듯해했고 예약을 한 사람인지라 약속한 날 일찍 장소에 도착했다.
엄마들이 한둘 도착하는데 어떻게들 오기는 오는데 당최 상기된 표정이다.
"도대체 000가 누구야?"
"00엄마로 예약된 거 없다는데?"라고 묻기까지 한다.
아, 그렇구나.
"00엄마"로 인사하고, 그렇게 '00엄마'로 살다보니 내 이름을 반아이 엄마들한테 알려줄 필요성도 못느꼈고, 나도 엄마들의 이름을 몰랐다.
직장에서 "00씨"라고 불렸던 것이 까마득한 옛날처럼 그렇게 내 이름을 대고 살아가는 일이 아이의 이름을 대고 사는 것보다 적다.
옛 어른들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절감하지만 아이 친구들 엄마한테 소개할 때 "00엄마" 대신에 "000입니다"라고 해야하나? 고민스럽다.
내가, 나의 이름이 묻혀져가는 현실이 좀 서글프기도 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애매한 기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