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를 임신하고 난 울었다.
기쁨의 눈물이 아니라 준비가 아직 안됐는데, 난 아직 아이한테 메이고 싶지 않은데, 난 엄마가 될 그릇이 못되는데...하는 걱정과 나의 자유가 앞으로 9달 후면 끝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급우울했고, 제대로 피임하지 못한 내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내게 임신은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일이었다.
그렇게 32주를 보내고 12시간 진통만에 죽도록 용써 낳은 딸아이를 친절한 간호사는 내 배위에 올려 놓아 주었다. 당신의 아이니 함 보라는 친절한 마음이었겠지만, 난 12시간의 엄청난 고통에 아이를 낳은 해방감도 느낄 수 없었다.
앞으로 평생 보게 될텐데..이제 내려놔도 되는데 싶을 정도였다.
남들이 모성애가 없다고 해도 할 수 없다.
딸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신랑과 자주 다녔던 심야 영화도 보러 갈 수 없었고, 둘만의 쇼핑도, 좋아하는 여행도 생각 못했다.
뿐이랴 친구도 내가 만나고 싶을 때 튀어나가 만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딸아이 8개월때 처음 여행을 갔다.
아이 재우고 맥주라도 가볍게 한잔 하려 했지만 딸아이는 우리를 감시라도(?) 하듯 자지 않았다. 결국 엄마,아빠가 먼저 잠들었다는…
외식도 맘편하게, 음식맛을 즐기며 할 수 없었다.
도라무통같은 원통에 둘러앉아 먹는 허름하지만, 페브리즈로도 냄새가 해결되지 않는 집은 입맛만 다셔야 했다.
딸아이가 15개월쯤 되었을 때로 기억하는데 신발 벗고 들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이었다.
각 테이블마다 칸막이가 세워져 있었는데 딸아이가 벌떡 일어나 칸막이에 기대는 바람에 도미노처럼 칸막이들이 쓰러졌다.
그 이후로는 애 아빠나 나나 외식하자는 말은 서로 묵계처럼 하지 않았다.
24개월이 지나고 기저귀도 떼고, 어느 정도 말을 알아듣게 되면서 다시 외식을 시작했다.
웬만하면 방으로, 왠만하면 아이 의자를 배려해주는 곳으로 좀 더 커서는 아이가 놀 수 있는 놀이방이 있는 음식점을 맛과 상관없이 찾았다.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하는 40가지 이유 "NO KID"> 를 보며 애를 낳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포기해야 했을 때...도대체 내가 왜 대책 없이 아이를 낳았을까 싶었고, 그러면서도 낳은 내 아이한테 좋은 부모가 되야 한다는 책임감에 부르르 떨고, 아이의 동선에 따라 하루종일 종종거리며, 어디가서도 내 할 말 또렷하게 할 줄 앎에도 불구하고 담임선생님 앞에서는 하고 싶은 말 꾹꾹 목 뒤로 넘겨 가며 그저 잘봐달라는 부탁 말씀밖에 드리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학부모로 살고 있는 내 자신과 오버랩됐다.
많은 이들이 아이를 좀 더 잘 키우려면, 아이를 똑똑하게,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려면, 아이를 행복하게 하려면...이라는 주제로 책을 쓴다.
아이라는 존재를 부정하면 하늘에서 벼락이라도 칠 것처럼 그렇게 말이다.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하는 40가지 이유'가 다 설들력 있다고는 말 못하겠다.
하지만, 아이가 있음으로 인해 우리가 하지 못하는 것들, 우리가 포기해야하는 것들, 우리가 생각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작가는 세심하게 짚어준다.
'이런데도 니들이 아이를 낳겠냐?'는 것 같기도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하는 40가지 이유'를 전부다 감당할 수 있으면 부모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듯 하다.
부모가 되기는 쉽다. 하지만, 제대로된 부모가 되느냐는 많이 어렵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