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때는 안그랬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어른들이, 우리 엄마, 아빠가 사용하셨던 어구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흠찟 놀랄 때가 있다.
딸아이를 키우면서도 나때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하는 일이 많다.
국민학교땐 분명 신나게 놀 수 있는 특권이 있었는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2학년 우리 딸아이만 봐도 놀 시간이 극히 부족하다. 숙제하고, 학습지하고, 피아노 학원, 영어학원 다녀오면 책 읽을 시간도 빠듯하다. 학원을 적게 다니는 딸아이도 그런데 학원을 여러군데 다니는 아이들은 어떻겠나.
국민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행복했을까,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행복할까..
소학교의 명칭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 제정·공포된 '조선교육령'에 따라 보통학교로 변경되었고, 1938년 교육령 개정으로 심상소학교(尋常小學校)로, 1941년 일왕의 칙령으로 '황국신민의 학교'라는 의미의 국민학교로 바뀌었다. 이것이 8·15광복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어 오다가 1996년 민족정기 회복 차원에서 초등학교로 바뀌었다.(네이버 사전참조)
내가 말하는 국민학교 시절이라면 1980년대를 의미하는 것이니 1996년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바뀐 시대가 이 글을 읽으면 '에이, 우리 때도 그랬는데...' 싶기도 하겠다.
아래 내용은 19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닌 내가 아이를 낳아 2000년대 초등학교를 다니는 딸아이를 보며 '우리 땐 안그랬는데…'하며 작성한 글이다.
국민학교에는 있고, 초등학교에는 없다!
도시락 & 급식
어떤 것이 아이들한테 더 좋을까. 물론, 학부모 입장에서 급식에 손 들 것이다. 지인의 딸아이 학교에서 1학기 동안 공사로 급식이 중단 됐었다. 도시락도 싸가기도 하고, 도시락을 사가기도 하고, 컵라면을 들고 가기도 했다. 그렇게 1학기 동안 엄마도, 딸아이도 방황 아닌, 방황을 하는 걸 지켜봤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이제 학부모니깐 도시락을 싸지 않는 쪽에 손을 들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엄마가 싸주던 정성 어린 도시락이 가끔은, 아주 가끔은 그립다. 계란에 부친 소시지, 멸치볶음 같은 단골 밑반찬에 잡곡밥. 그때는 아이들이 도시락 뚜껑 열고 선생님께 검사도 받았었다. 쌀밥인지 아닌지 선생님께서 일일이 확인했다. 혹, 쌀밥만 싸왔을 때는 짝꿍이 콩을 한 두개 빌려다 밥 위에 올려 놓기도 했었다.
반면 요즘 아이들은 천편일률적인 급식이다. 급식을 남기면 안되므로 우리처럼 반찬을 나눠 먹지는 않아도 서로 먹기 싫은 반찬은 교환해 먹는단다.
"내가 김치 먹어줄께, 네가 나물 먹어줘" 뭐, 이런식이다.
놀이터 & 컴퓨터
놀이터에서 살다시피 했다. 애들이랑 몰려 다니며 모래 장난도 하고, 다방구도 하고, 같이 소꿉 장난도 했다. 혼자 놀지 않았다. 형제도 적게는 둘, 많게는 셋, 넷도 있어 집에서도 생존경쟁이 심했다. 친정 엄마는 삼남매한테 딸기를 사와도 정확하게 저울에 달아 똑같이 나눠 주셨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못 논다. 시간에 쫓겨 혼자 집에서 틈틈이 논다. 혼자 책 읽고, 혼자 컴퓨터하고, 혼자 게임한다. 형제도 많아야 한,둘이니 집에서도 경쟁이 없다. 먹을 것을 양보할 필요도 없고, 우리 엄마처럼 저울에 달아 공평하게 나눌 필요도 없다.
학급수
우리 때는 한 반에 50명이 넘는 아이들이 한반이었다. A가 맘에 안들면 B랑 놀 수 있는 선택폭이 있었다. 반면에 선생님의 레이다망이 아이들한테 골고루 뻗치치 않아 학습적으론 비효율적이긴 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선택의 폭이 좁다. 반 아이들이 채 30명도 안되고, 그 중 여자 아이들이 15명이라고 한다면 A가 이래서 맘에 안들고, B는 저래서 맘에 안든다고 해도 다른 친구가 없다. 맘에 안들어도 그냥 둥실하게 지내야 하는 것이다. 학습의 효과는 우리 때보다 상대적으로 좋을지 모르겠지만 '왕따'란 부작용이 생긴 듯 하다.
국민학교에 있고, 초등학교엔 없다고 딱 정하긴 그렇지만 옷 물려 입기, 주기는 요즘은 많지 않아 보인다.
4살 위의 언니가 있는 덕분에(?) 나는 새 옷을 사본 적이 거의 없었다. 거의 언니가 입다가 물려 준 옷으로 유년 시절을 보냈다는 표현이 맞다. 하지만, 2살 아래 남동생은 남자에다, 언니에서 나까지 물려 입은 옷이 남동생까지 가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나은 편이다. 지인은 2살 위가 오빠란다. 어렸을 때 남들이 여자앤지, 남자앤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단다. 오빠로 부터 물려 받은 옷에다 그때 유행했던 바가지 머리가 한 몫 했다는데...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외동이 많을 뿐더러 흔한게 옷이라 옷을 물려주고, 물려 받는 것이 더 조심스럽다.
부쩍부쩍 자라나는 딸아이의 옷이며, 신발은 거의 새거지만 거의 재활용 함에 넣는다. 아이들이 입는 옷, 신발이다 보니 아무리 깨끗하게 세탁하고 보관했다고 해도 군데 군데 얼룩얼룩에, 신발은 몇 번 신지 않았어도 까진 상처가 있어 물려 주기 그렇다.
우리 때보다 많이 공부하고 놀 시간이 부족한 요즘의 아이들을 보며 아이들은 아이답게 놀아야 하는데 하는 마음에 안타까움도 있다. 내일이면 주말이다. 인사동거리를 거닐며 추억이 불량식품이라도 먹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시절이 그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