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다가 좋다 :: 행색 초라해 백화점서 인정받지 못한 노부부
노무현 대통령 배너

수다가 좋다

오후 6시가 다된 시간이었다. 백화점엔 그래도 쇼핑하는 사람들로 꽤 많이 북적됐다. 뭐, 좀 싸게 나온 것 없나 싶어 껄떡되고 다니는데, 가까운데서 큰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70이 다 된 노부부가 뭐에 화가 나셨는지 큰 소리로 매장 직원한테 손가락질까지 하며 소란이었다.
가장 재밌는 것이 불구경, 싸움구경이라고 했던가.
많은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열심히 구경에 몰입하자, 어디선가 검은 양복의 경호원이 등장했다. 경호원은 그 노부부를 재재하고 나섰는데, 할아버지한테 욕만 얻어 먹었다.
"이 XX야! 너 뭐야, 비켜!"

백화점에서 돈주고 물건사면서 의외로 기분 상할 때가 많다. 고가의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서비스, 친절을 받지 못하고 물건을 살 땐 내가 떠리 상품을 산 것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해서 사야 하나 싶을 때가 있다. 그런 불친절에 분노 하신걸까…

소동은 싶게 가라앉지 않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큰 소리로 매장 직원에게 삿대질 하며 했던 말 또 하고, 또 했다.

할머니의 반복되는 말씀을 정리하면 이렇다.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DM으로 발송된 쿠폰을 가져오면 신상품 샘플을 준다는데, 그 샘플을 무한정 주는 것이 아니라 하루 200명 한정으로 주는 쿠폰이었다.
그 샘플을 받으러 노부부는 3일을 꼬박 백화점에 나왔는데, 올 때마다 그날 수량이 끝났다고 헛걸음을 한 했는데, 오늘이 쿠폰으로 샘플 받는 마지막 날이라 기어이 화가 폭발하신 모양이다.
"내가 3일을 왔어. 겨우 손가락만한 쬐그만 샘플하나 주면서 사람을 이렇게 왔다 갔다 하게 해? 그까짓꺼 주면서 이러면 안되지"

물론, 할머니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통 수량 제한 샘플을 받으려면 백화점 오픈 시간에 맞춰 나가야 받을 수 있는데, 노부부는 너무 늦은 시간에 온 것도 실수라면 실수다. 거기다 손가락만한 조그만 샘플이라고 하더라고 정품용량이 30ml 정도인걸 감안하면 1/10을 주는 것이고, 가격으로 치면 몇 만원이 되는 것이라 의외로 경쟁이 치열한 것이다. 그런 의욕도 없지만, 이제는 한정 수량 쿠폰 샘플에 그닥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것도 부지런해야 받을 수 있다.

노부부의 우격 다짐 까칠함도 결코 아름다운 모습이 못됐지만, 매장 직원도 융통성도 그닥 권장할 판매사원의 자세는 아닌 듯 하다. 쿠폰에 명시한 샘플이 없으면 다른 샘플이라도 드렸음 이렇게 큰 소리 나는 일도 없었을 텐데...도대체 그 경호원은 뭔 죄로 대뜸 욕부터 얻어 먹어야 했냔 말이다.

하지만, 그 노부부의 행색이 뽐났다면 아마도 화장품 코너의 직원이 그렇게 매몰차게 3일 내내 수량이 떨어졌다는 말을 하지는 못했을 것 같기도 하다. 뭐,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소란을 피울 만큼 대단히 큰 사건은 아닌 듯 싶기도 하다.
거기다 할아버지는 말리는 경호원한테 욕까지 보태서 해주는 바람에 모든 사람의 시선을 다 끌었고, 그렇게까지 해서 그 할머니 말씀처럼 손가락 마디보다 작은 샘플을 받고 싶을까…. 씁쓸했다.


한번은 이런 경우도 있었다.
백화점 식품부에서 장을 보고 있을 때였다. 행색이 초라한 아저씨가 백화점 시식 코너를 돌며 배를 채우는 듯 아무것도 산 것은 없는데, 돌아다니며 열심히 시식을 하는 것을 봤다. 시식 코너를 다 돌고도 배가 덜 찼는지 또 돌고, 내가 본 것만 3번이 된것 같은데,,,그때 경호원이 등장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그러자 행색이 초라한 아저씨는 얼버무리며 자리를 피했다.

백화점이 자선 단체도 아니고 당연한 처사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손님입장에선 그닥 반갑지는 않다.
행색이 초라하면, 아무것도 사지 않으면 백화점에는 대접 받지 못한다. '손님은 왕이다' 는 '손님은 살 때만 왕이다'라고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