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추울 때가 좋았다. 스케이트 타러 가서 먹는 떡볶이도,오뎅국물도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중의 하나였고, 눈싸움, 눈사람 만드는 것도 겨울의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근데, 요즘 아이들, 내 딸아이를 봐도 밖에 나가서 눈싸움을 한다거나, 스케이트를 타러 가는 것보다는 주말에 뭐할까...찜질방이나 간다.
찜질방이나….라고 말하지만 그 곳에는 많은 군것질 거리가, 많은 놀이가 있다. 또래 아이들도 쉽게 만날 수 있고, PC방도 있으니 아이가 쉽게 컴퓨터도 사용할 수 있다.
아빠는 책읽고, 엄마는 찜질방 들낙거리고, 딸아이는 군것질하거나 책읽거나, 컴퓨터하거나...이렇게 가족을 다 만족시킬 수 있는 곳이 찜질방이다. 그래서 가게 된 찜질방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로 자리 깔고 누울 자리 조차 없을 만큼이었다. 사우나 안에도, 찜질방 안에도 어디 비비고 앉을 만한 곳이 없을 만큼 그렇게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이 많으면 꼭 눈살 찌푸릴 일이 생긴다.
찜질방에는 소금방, 황토방, 아이스방 같이 방이 나뉘워져 있지만, 그 중에서 제일 땀을 단시간에 많이 낼 수 있는 곳은 역시 한증막이다.
이글루와 비슷한 모양으로 생긴 쪽문을 열고 들어가면 둥글게 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마주 빙 둘러 앉게 되어 있다. 다른 그 어떤 방보다 온도가 높을 뿐 아니라 아주 뜨거울 때 거적을 쓰고 들어가라고 문앞에 거적까지 마련되어 있는 뜨거운 곳이다. 열기 가득한 한증막 안에는 땀을 내지 않으면 안되는 크나믄 사명을 띈 많은 이들이 무표정하게 땀을 빼고 있는데, 그 조용한 가운데 어디선가 소근소근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들렸다 하는 것이다.
나랑 마주한 아저씨였다.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혼자서 저렇데 떠드나 싶었는데.....근데, 머리에 둘러 쓴 수건 때문에 보지 못했을 뿐 휴대폰으로 통화중이었다. 그 뜨거운 한증막에서 말이다.
'저 사람은 뉴스도 안보나? 열받아서 휴대폰이 펑 터졌다는 거 모르나??' 중요한 건 나만 질색할 뿐 다른 어떤 이도 반응이 없다.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거나 말거나 나는 땀을 뺀겠다는 건지, 어쩐건지…
휴대폰 폭발로 혼자서 다치면 모르겠는데, 이 조그만 한증막에서 저건 아니다 싶은 것이다. 바로 한증막을 나왔다.
이번엔 한증막보다는 덜 뜨거운 황토방으로 들어갔다.
한증막으로 몰린 사람들 때문에 그 곳은 아주 많이 여유로웠다. 누워서 찜질할 수 있을 만큼의 공간에 나도 목침을 한 개 챙겨 누웠다. 누워 자세를 정비하는데 손에 뭔가 만져지는 것이다.
'어?' 휴대폰이었다. 이런, 여기도? 옆에 누운 아주머니의 것이었다.
아무리 한증막보다는 덜 뜨겁다고 해도 여기도 보통 75℃ 정도를 유지하고 있는 방인데...저러다 터지면?
제대로 찜질도 못하고 그냥 나왔다.
도대체 열기 가득한 곳에 휴대폰을 왜 들고 들어와서 저렇게 얌전하게 모셔두는 걸까.
당최 개념 상실인 이 분들 덕에 찜질도 맘껏 못하고 저녁을 먹었다. 찜질방의 대표적인 음식이라면 뭐니뭐니 해도 미역국을 빼놓을 수 없다. 땀 쭉 빼고 조미료 듬뿍 들어간 미역 건더기 많은 미역국은 나름 별미다. 미역국을 떠먹으려는데 허연게 뜨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밥알이 불다불다 형태를 알아보지 못할 만큼 된 모양이었다. '이건?'
갑자기 프로그램 제목은 자세히 기억 못하겠지만, 소비자 고발, 불만제로 뭐, 그 중의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먹던 된장국을 모아 그것을 뚝배기에 끓여 다시 된장찌개로 내보내고, 먹던 쌈장을 모아 다시 또 손님상에 내보내던 그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누가 먹던 미역국을 다시 데워 가지고 나왔다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숟가락을 휘휘 돌려보니 형태를 알아 볼 수 없는 밥알이 하나 둘 뜨기 시작하는데, 오,,,이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 아닌가. 모르면 모를까. 불끄고 먹어야 하나?
(휴대폰을 옷장안에 모셔두지만 않았다면 휴대폰 촬영이라도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제대로 식사도 못하고 나왔다. 식당 아주머니께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내가 먹던 미역국에 침뱉지 않고 다시 데워 다른 손님상에 내보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 그냥 꾹 참았다. 다시는 여기서 밥먹지 말아야지!!란 결심만 했을 뿐이다.
이 세상은 여러 사람이 더불어 살도록 되어 있는 곳이다. 근데, 왜 이렇게 '배려'를 쌈싸 먹은 사람들이 많을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면 적어도 피해는 주지 말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양심과 배려가 상실된 찜질방에서 아주 많이 유쾌하지 않았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