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다가 좋다 :: 며느리한테 '설 잘보내'는 인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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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가 좋다

얼마 전 아이 학교 친구 엄마들을 만났다. 아이들이 방학하니 만날 기회가 당연히 줄었고, 아니 줄었다는 표현보다는 못 만났고, 그래서 아이들이 학원에 있는 시간을 틈타 아주 잠깐 만났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인사를 나눴다.

"설 잘 보내~"
"어떻게 설을 잘 보내? 허리도 못 펴고 일만 하고 올텐데.."

내 인사에 버럭 화를 내는 것이다. 그것도 그 자리에 모인 엄마들이 전부 다-
하, 그렇다.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이 땅의 여자들에겐 설이란 이런 것이다. 종가집이 아니어도, 제사를 지내는 큰 집이 아니어도 기본적으로 식구들이 다 모이고, 기본적인 음식은 장만하는 설이니, 며느리라는 이름의 여자들이 어떻게 잘 보낼 수 있겠는가.
설이라는 이름의 명절이 다가오면 다가올 수록 쳇기기가 밀려오면서 가슴이 깝깝해 오는 증상은 나만이 갖고 있는 증상은 아닌 듯 하다.
일을 많이 하고 적게 하고는 상관없이 다들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그래서 더더욱 설을 반길 수 없는 모양이다.

나는 큰 며느리 싫어 결혼했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어쩔 수 없이 외며느리가 되고 보니 본의 아니게 책임이 많아졌다.
아직은 어머니도 계시고, 아주머님도 계시지만, 그래도 전을 부치거나,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거의 내 몫일 수 밖에 없다. 어머니와 단 둘이 준비하는 차례음식이니 당연히 아주 많이 간소해지긴 했지만, 그 모든 것을 내가 아니면 안된다. 그러니 설을 앞두면 가슴이 깝깝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누구한테 미룰 수도 없으니 핑계를 될 수도 꽤를 낼 수도 없다.

차례 음식을 준비할 때 일손이 적다는 것은 그 일을 하는 사람에겐 상당한 부담감이다. 아들이라는 것은 아내, 그러니깐 며느리가 있을 때 명절 때 유용하다. 며느리가 없는 아들은 그닥 존재감이 없다.
그저 장보러 갈 때 기사나 하면 모를까. 그들이 앉아서 전을 부칠 것도 아니고, 차례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멍하니 티비와 친구하다 차려 놓은 차례상에 절하는 것, 먹는 것이고, 제대로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아내 눈치만 본다는 것이다. 아무리 티비에서 뭐라고 가르치든 상관없이 아들이라는 존재는 명절 때 변하지 않는 자세로 임한다. 결혼으로 시댁은 하나의 노동력을 마련한 것이고, 남편은 그 노동력을 제공한 것이다.

MS Power Point ClipArt


오죽하면 명절 때면 별 상상의 나래를 다 편다.
1박 2일 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그렇게 위중하지 않은 병이라도 걸렸음, 명절 때만 바쁜 직업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면 바쁘다는 핑계를 될 수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능력 있는 며느리라 도우미 아주머니로 대체하는 노동력을 어머니께 보내드리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물론, 허름한 츄리닝싸들고 시댁에 들어서는 순간 깝깝증은 사라진다. 어차피 해야될 일이고, 내가 아니면 안되는 일이니 열심히 일을 끝낸다. 그렇게 시댁에서 꼬박 24시간을 봉사하고 나오면 1년치 숙제를 한 듯한 뿌듯함까지 있을 정도다. 근데, 꼭 가기 전에 이렇게 깝깝하다.

드라마에서처럼 '아줌마~~'하고 살 능력이 못되니 올해도 나는 시댁에 갈 것이고, 열심히 봉사할 것이다. 츄리닝 무릎이 더 이상 튀어나올 수 없을 만큼, 빨아도 없어지지 않을 기름 얼룩이 온 옷에 생길 만큼 그렇게 기름에 쩔어 언제 그랬냐는 듯 외며느리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 올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나...일단, 가기 전에 '기꺼이'보다는 '어쩔 수 없이'란 마음이 더 강한 것을!


며느리들이 예쁘게 한복 차려입고, 새배드리고, 윳놀이나 하면서 설 음식을 맛나게 먹기만 할 수 있는 건 분명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더더욱 며느리들에게 '설 잘 보내~'는 인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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