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전 초등학교 방과후 컴퓨터 강사로 근무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와 1:1로 계약된 강사가 아닌, 회사를 끼고, 파견 나간 계약직이었다. 회사는 학교와 계약을 하고 학교는 교실을, 회사는 그 안에 컴퓨터와 책상을 채우고, 그리고 선생님을 파견한다. 그리고 아이들한테 받는 수업료로 이익을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는 교장 선생님, 교감선생님, 그리고 행정실 선생님같이 막강한 권력을 가진 분들이 존재하고 그 분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아야 학교 생활을 잘 할 수 있다. 그때도 학교 선생님들과 어색한 회식과 더불어 학교에서 원하는 문서를 만드느라 더 피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나는 현역이 아니다. 동료였던 A는 아직 현역이다.
A는 초등학교에 파견된 컴퓨터 선생님이다.
회사를 끼고 파견된 선생님이다. 3달에 한번씩 새롭게 아이들을 모집하고, 그 아이들을 위한 강좌를 개설하고, 자격증 시험준비, 접수, 시험 보는 날 같이 동행하는 것까지 모두 A의 몫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점점 더 바쁘고, 컴퓨터에 시간을 할애할 아이들을 찾기란 예전보다 더 어려운 것이다.
3달에 한번 새롭게 모집한다고는 하지만, 2달이 지나면 아이들을 모을 준비를 시작하고, 안내장을 만들고, 아이들 수업 시간에 배정된 컴퓨터 시간에(물론, 학교의 배려가 있어야 가능하다) 공개수업까지 진행한다. 말 그대로 아이들을 모집하기 위한 영업을 1달이 넘게 한다. 컴퓨터 시간이 정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학원 시간 때문에 시간을 못 맞추는 아이는 그 시간까지 배려해 개인지도까지 불사해야 한다.
거기다 기본급이 있기는 하지만, 그 기본급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교통비에 불과하고 오직 인원수*수당으로 월급이 결정되는 것이기에 부족한 월급이라도 제대로 채우려면 모집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모집 기간에는 주에 몇 번씩 본사에 모여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모집할 수 있을까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고 인원이 부족한 학교로 지원까지 나간다.
그렇게 정해진 기간 동안 모집을 하고도 인원이 채워지지 않으면 모집 기간을 지나서도 채우는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근데, 이렇게 열심히 사는 A에게 의욕 저하로 만드는 방과후 선생님이 있다.
원어민 영어선생님이 그렇다.
영어를 쓰는 나라에 태어나 어렵지 않게 말하고 썼던 원어민 영어 선생님이 학교와 1:1로 계약하고 방과후 수업을 개설했다.
그 선생님은 모집을 위해 특별히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원어민 선생님의 영어 수업을 단돈 3만원에 받을 수 있다는 큰 매력 때문에 신청이 언제나 모집인원보다 넘치고 결국은 추첨을 통해서 아이들을 추리기까지 한다니 행복한 비명앞에 옆에서 지켜보는 A는 마음이 좋을 리 없다. 거기서 끝이면 상관이 없는데 학생들은 추첨에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컴퓨터와 영어를 동시에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신청했다 다행히(?) 영어가 추첨에서 떨어지면 컴퓨터를 듣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당연히 컴퓨터를 포기하고 영어로 드는 것이다.
오늘도 A는 학부모로 부터 여러 통의 취소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죄송한데요...영어가 추첨됐어요. 취소해주세요"
자기나라 말을 가르치는, 말 그대로 놀고 먹는 것 같은 원어민 선생님은 아이들도 쉽게 모집하지만, 학교측의 배려도 대단하다.
화장실이 멀다고 교실을 옮겨달라는 원어민 선생님의 투정엔 없는 뒷문까지 만들어 편의를 봐주기도 하한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A가 수업중일때 교장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수업을 10분 일찍 끝내줄 수 있냐는 내용이었고, A는 학교의 절대 권력자 말씀이니 당연히 그렇게 했다. 하지만, A는 10분 일찍 끝난 아이들이 원어민 선생님의 짐을 옮기는데 동원됐다는 사실을 나중에 아이들한테 전해 듣고 아주 많이 황당했다.
교장선생님이 전폭적으로 밀어주고, 배려 받아 콧대 높은 원어민 선생님은 옆 교실의 컴퓨터 수업이 시끄러우면 수업중에도 달려온다. 그리고는 말 그대로 '샬라 샬라' 하고,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해도 '쏘리'하고 마이크의 볼륨을 낮출 수 밖에 없단다.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환경에 학교의 편의와 상관없이 수업에 임하는 A로서는 당연히 맥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게다. 온 나라가 영어에 올인하고 있으니 누구를 탓하겠냐만서도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