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다가 좋다 :: 완벽한 선생님, 따라가기 힘든 엄마
노무현 대통령 배너

수다가 좋다

딸아이가 3학년이 되었다.
선생님을 처음 만나는 반 오리엔테이션 때 담임선생님은 강한 인상을 심어 주셨다. 공부 잘 가르치시고, 아이들도 잘 다루신다는 명성은 익히 들어 최대한 긴장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만나 뵌 선생님은 훨씬 더 카리스마 넘치는 의욕적인 분이셨다.

아들만 둘이라는 선생님은 큰 아들이 군대를 갔다니  연세가 꽤 있으신 분인데, 그 연세의 다른 분들처럼 모든 걸 귀찮아 하지 않고, 오히려 엄마들보다 더 의욕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에너자이저 같은 분이다. 보기만 해도 포스가 장난이 아닌 주눅 들만한 카리스마 외모에, 목소리마저 카랑카랑해 엄마들도 바른 자세로 반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지켰음이다.

 

담임 선생님은 당신이 얼마나 의욕적인지, 얼마나 완벽한지에 대해 말씀하셨다.

"어머니들, 저희 집엔 언제 오셔도 괜찮아요. 그만큼 정리 정돈이 완벽해서 언제 어느 때든 손님이 오셔도 전혀 상관이 없답니다. 제가 학교일로 바빠 퇴근시간이 꽤 늦는 데로 불구하고 집안 일에 소홀하지 않습니다. 인스턴트 음식은 거의 안먹어요. 1년에 한 두번 라면 먹을까 해요. 제가 아들만 둘인데 그 아들 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제일 예쁜 도시락을 싸오는 걸로 유명했습니다.

색상, 영양까지 맞춰 도시락을 매일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싸줬습니다…….한번도 타파통에 반찬 두고 먹은 적도 없습니다. 남편은 그래요. 어차피 남으면 다시 담아 놓을 걸 뭘 그렇게 덜어 먹냐고...그래도 저는 꼭 예쁜 접시에 덜어 먹습니다."

 

MS Power Point ClipArt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그랬다. 나중에 며느리 보면 절대로 선생님 같은 원더우먼이 아닐 것이고, 그렇게 귀하게 키운 아들도 타파통의 반찬을 그대로 먹을 것이라고….내 머리 속을 들여다 보기라도 한 것처럼 선생님이 이어 말씀하셨다.

"그래서 걱정이에요. 요즘 애들 거의 직장 갖고 있잖아요. 나중에 며느리가 타파통의 반찬 그대로 식탁에 올려 놓으면 어쩌나 지금부터 걱정이랍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 수록 선생님을 수퍼 원더우먼 자체였다. 그것도 재수없는 원더우먼이 아니라 배우고 싶은 원더우먼의 모습일 정도로 반 아이들한테도, 가정에도 맡은 책임을 다하려는 선생님의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덧붙였다.

"저는 수학 시간에 설명한 걸 이해 못한 친구가 있으면 쉬는 시간까지 끌어다 놓고 이해시킵니다. 모든 친구들이 같이 가는 걸 원칙으로 합니다....어머니들은 아이들이 자기주도적 학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아이들의 과제를 도와주시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과제를 했는지 확인만 해주시면 됩니다.... 준비물은 기간을 며칠 드리지만, 되도록이면 첫 날 준비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요.... 가정 통신문은 하든, 안하든 전부다 체크해서 보내주세요….." 

선생님의 당부는 끊임 없이 계속 됐고 약속된 1시간 보다 1시간이 오버 되어서야 오리엔테이션은 끝났다.

교실을 나오면서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준비물, 가정 통신문 바로 바로 보내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선생님이 잘 가르치시고, 한 명의 낙오자 없이 이끌어 갈 만큼 의욕적인데, 엄마가 따라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근데, 이것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내가 원더우먼이 아니라 깜빡깜빡하는 통에 실로폰을 안 챙겨 보내기도 하고, 일기장을 챙겨가지 보내기도 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확인작업을 철저하게 하지 않은 덕분이다. 저번주에만 학교에 스파이처럼 침입해(?) 아이와의 약속 장소에 실로폰을, 일기장을 두고 왔다.

수첩이며, 메모장이며 아무리 열심히 써놔도 어떻게 빈틈이 생기는지...걱정이다. 완벽한 선생님 따라가느라 많이 허술한 엄마는 힘들 수 밖에 없는 1년이 될 듯 하다.

그래도 이렇게 1년을 보내면 아이나 엄마나 제대로 군기(?) 들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