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다가 좋다 :: 아이들 이간질시키는 조사, 왜 필요한가
노무현 대통령 배너

수다가 좋다

딸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다. 그 딸아이 2학년 때 작년이다. 작년 다른 반에서 아이들로 하여금 좋아하는 친구, 싫어하는 친구를 그리고 이유까지 적으라고 했단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적으라니깐 딱히 싫어하는 친구가 없어도 조금만 자신을 불편하게 한 친구가 있으면 싫어하는 친구로 적어냈다.

그냥 그것으로 담임선생님께서 반 아이들 틈에서 제일 '싫어하는 친구'와 '좋아하는 친구'을 통해 반 아이들을 파악하기 위함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 자료는 학부모 상담때 아주 유용한(?) 역할을 했다.

A군은 그 반의 장난꾸러기였다. 장난이 심하니 당연히 담임선생님도 힘드셨을 것이고, 여자 아이들도 A군의 장난에 힘들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장난이 심하다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 나이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그렇듯 그렇게 나이가 먹어가면서 나아지지 않을까 싶은데, 그건 딸아이 또래의 남자아이를 보는 엄마의 눈이었나 보다. 담임선생님은 반 아이들이 A군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A와 여자아이들이 짝하기 싫어해 애를 먹는다는 담임 선생님의 의견에 반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자료까지 보여주며 A군 엄마에게 말하고 또 말했다. 분명 장난이 심한 것 말고는 특별히 아이가 학습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상담시간내내 장난이 심하다는 이유로  A군의 엄마는 연신 '죄송하다, 주의 주겠다' 를 반복했다.

그 반의 B양은 반대로 아주 착실하고 공부도 잘한다.
학습능력도 뛰어나고 나서지 않고, 조용히 묻혀 가는 스타일이다. 담임선생님은 당연히 그런 A양이 좋을 수 밖에 없으니 상담시간 내내 칭찬으로 화기애애했음이다. 과도한 칭찬에 B양 엄마가 오히려 몸둘바를 몰랐다는 후문이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은 반 아이들이 A양을 어떻게 생각하는 자료까지 보여 주며 잘하고 있다고 최종 마무리를 하고 상담을 마쳤단다.

MS Power Point ClipArt


아이가 엄마가 키우는데로, 바라는데로만 커준다면 뭐가 걱정이겠나.
아이를 낳기 전에 나도 그랬다. 버릇 없는 아이, 인사성 바르지 않은 아이, 백화점이고 마트고 아무데서나 벌러덩 누워 땡깡 부리는 아이, 어른들 말에 똠방똠방 말 받는 아이….눈살 찌푸리는 아이를 나도 많이 봤고, 쯧쯧했었다. 근데, 아이를 낳고 그런 생각을 버렸다. 내 아이도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한테 눈살 찌푸릴 수 있는 아이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고, 아이를 키우면서 절대로 내가 바라는데로 바른생활 아이로 키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책을 아무리 읽어 줘도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도 있고, 선천적으로 공격적인 아이도 있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가 있는 반면 다른 사람한테 관심많고 나대기 좋아하는 아이도 있다. 그 모든 걸 다른 사람들이 만족할 만큼 튀지 않는, 선생님이 바라는 틀 안에 딱 맞는 아이로, 사랑받는 아이로 존재하길 모든 엄마들이 바란다.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의 기대처럼 빨리 변하지 않는다. 생후 10개월만에 발짝을 뗐던 것보다 더 천천히 변한다. '아이들이 변했어요'란 프로그램은 속성이다. 특별히 문제가 있지 않아도 타고나 성격이 그러면 바꾸는데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학교생활을 하면서 선생님이 원하는 모양으로 아주 조금씩 변한다. 거친 돌이 파도에 둥근 돌로 바뀌는 것처럼 그렇게 아이들도 아주 조금씩 변하는 것이다.

A군의 엄마는 1년 동안 맘고생이 심했다. 빨리 변하길 바라는 선생님과 천천히 변하는 아들 사이에서 말이다. 에디슨같은 아이는 과거자 현재나 선생님도 싫어하는 모양이다.

3학년 딸아이는 오늘 학교에서 돌아와 그랬다.
"엄마, 오늘 선생님이 좋아하는 친구, 싫어하는 친구 적으랬어."
"누구 적었는데?"
"좋아하는 친구는 내 단짝친구 P적었고, 싫어하는 친구는 저번에 나한테 욕한 O적었어."
"선생님은 뭘 그런걸 적으라고 하시냐. 이름 안쓰고 적어낸거야, 아니면 이름 쓰고 적어낸거야?"
"내 이름 쓰고 적었지. 그리고 누가 반장이 됐음 좋겠냐는 것도 있었어."

나도 딸아이 1학년 때 많이 힘들었다. 아이가 피해의식이 있다, 아이가 점수에 연연한다, 친구들과 잘 부딪힌다...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교직생활 4년차인 담임 선생님은 딸아이 정신과 검사를 권유했다.
걱정되는 마음에 검사를 했고 결과는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굳이 찾는다면 사회성 부분이 조금 낮다는 정도였다. 그 이후 담임선생님은 더 이상 심하게 말씀하진 않으셨지만, 선생님이 바라는 아이로 딸아이를 맞추기 위해 1년을 한결같이 노력(?)했고, 그 노력을 옆에서 따라 하느라 엄마인 나도 많이 힘들었다.

그 사이에 낀 딸아이도 그렇게 수월하지는 않았을 게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2학년 담임선생님은 하교길에 만나면 반가워 달려가 인사하고 좋아하는데, 1학년 때 선생님을 뵈면 피할려고만 한다.

딸아이를 보면 아주 천천히 아이가 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선생님께 칭찬받을 수 있는지 아주 조금씩 터득하고, 선생님이 원하는 틀 안에 맞춰지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도 완벽하지는 않다.


오늘 담임선생님의 조사는 분명 다음 주에 있을 상담에 자료로 이용될 것이다. 내가 선생님이 좋아하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좋아하는 친구', '싫어하는 친구'를 적어내는 것 따위에 신경쓰지 않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이것은 아이들간에 이간질과 뭐가 다를까 싶기도 하고, 없는 싫은 친구까지 써내야 하는 이런 조사행위가 왜 필요한지는 역시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