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좋은 날보다 안좋은 날도 있고 행복한 날보다 우울한 날이 더 많을 때도 있다. 그래서 작은 데서 희망을 보고 행복을 느끼려고 많은 사람들이 노력한다. 문화생활을 한다는 것은 눈으로 청량과자를 먹는 것과 비슷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뮤지컬이나 연극, 콘서트 같은 경우는 큰 맘먹고 나서야 하지만, 영화는 적은 돈 들여서 기분만 내키면 바로 볼 수 있다. 특별히 영화에 조애가 깊거나 영화를 많이 알아서라기 보다는 그 시간 동안은 영화에 몰입할 수 있고, 그 시간만큼은 영화속 세상에 살 수 있는 듯 함도 은근히 좋아한다.
그닥 즐거운 일 없는 요즘이라서 그럴까. 즐겁고 상큼한 영화가 좋다. 처음부터 끝까지 깔깔깔 대면서 웃을 있는 영화도 좋고, 짠한 감동에 며칠 동안 감동의 여운을 간직할 수 있는 영화도 좋다. 근데, 보면서도 내내 인상 찌푸리고 보고 나와서도 찝찝한 여운에 그닥 밝지 못한 영화도 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거의 보고 나서 상쾌한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친절한 금자씨>도 그랬고 <올드보이>는 더더욱 그랬다. 도대체 왜 이런 영화를 만들어 스멀스멀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걸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박찬욱감독의 영화 색깔이고 그 색깔이 싫으면 안보면 되는데….찝찝할 때 찝찝하더라도 일단은 보고 찝찝하겠다는 쪽이다.
내게 '박쥐'가 그랬다.
신부가 뱀파이어가 된다는….그래서 친구의 아내를 탐하고 살인까지 이른다는 파격적인 내용만큼 충격적이었다. 특히나 이슈가 됐던 송강호의 성기 노출장면도 그랬다.
'박쥐'는 끝까지 웃어보자는 영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총질 해대는 영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화려한 액션이 있는 영화도 아니다. 굳이 따지고 들면 멜로쪽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교과서적으로(?) 영화를 말하자면 이렇다. 뱀파이어가 된 신부가 된 상현(송강호)이 신앙과 쾌락의 욕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적인 고뇌를 사실적으로 담아냈다는 이야기다.
간이 맞든 안맞든 요리사가 만드는 음식은 보는 것만으로도 많이 행복하다. 입에 넣지 않아도 눈으로 먹기만 해도 먹음직스럽고 군침이 돈다.
그런가 하면 맛은 좋은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예쁘지 않은 그릇에 먹게끔만 담아 놓은 음식은 입에 넣기 전까지는 맛있는지 눈으로 가늠할 수 없다.
'박쥐'는 맛없게 차려진 식탁에 앉아 있다 나온 기분이다. 신부 상현의 내적 갈등과 그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까지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친구 부인 태주와의 금기된 사랑을 나누는 장면도, 그가 뱀파이어가 되어 살인과 신앙과의 사이에서 강등하는 모습도 충분히 그렇게까지 다큐로 보여주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심하다.
영화속의 베드신은 많은 상상을 준다. 배우들의 키스는 너무 황홀해 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좋다. 하지만, 상현과 태주의 키스는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키스가 아니라고 하더라고 그냥 욕정만 가지고 하는 키스라고 하더라도 많이 동물적이다. 키스가 동물적인데 그들의 사랑은 어떻겠나. 노출이 심하건 심하지 않건 상관없이 보는 사람에 눈에 야하다기 보다는 짝짓기에 가까운 몸부림이라고 하고 싶다.
뱀파이어가 된 상현도 심하다. 뱀파이어에 관련된 영화도 지금까지 아주 많았다. 귀여운 뱀파이어도 있었고, 안스러운 뱀파이어도 있었다. 그들이 원해서 뱀파이어가 되지 않았듯 살인으로 다른 사람의 피를 먹어야 하는 그들의 고민이 번뇌가 이해는 되지 않더라도 안됐는 마음은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예뻐서가 아니라 피를 먹어야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뱀파이어임에도 살인이 지나치지 않았다. 아니, 지나쳤다는 표현보다는 피를 먹기는 하되 잔인하지는 않았다. 사랑하듯 목덜미를 앙-하고 피를 빨아 먹는 것은 그래도 보기 훨씬 좋지 않나…
'박쥐'의 뱀파이어는 보기 좋게 피를 먹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거짓없이 최대한 잔인하게 최대한 시끄럽게를 모토로 그렇게 상현과 태주는 피를 갈구한다.
예쁘게 보이려는 마음이 전혀 없는 영화속 인물들에 하는 행동도 잔인하기까지 하니 보는 내내 불편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음이다.
박찬욱 감독이 만드는 영화가 늘 그랬든 '박쥐'도 다르지 않다. 색깔이 좀 더 짙어졌을 뿐 그는 그의 색깔대로 만들었다. 하지만, <친절한 금자씨>,<올드보이>처럼 한번 보면 절대 잊혀지지 않는 찜찜함의 여운은 오래갈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