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다가 좋다 :: 결혼 10년만에 생긴 자유시간...좌불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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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가 좋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도, 유치원에 다닐 때 한번도 떨어져 있어 보지 못한 딸아이가 수련회를 갔다. 태어나 10살이 되도록 한번도 떨어져 본 적 없는 딸아이가 외박(?)을 한 것이다. 딸아이가 없으면 뭐하고 놀까~~한 달전부터 남편과 함께 고민했다. 우리도 신혼 기분 낼겸 가까운데로 1박 2일 여행을 다녀올까 하는 마음에 여행지를 물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련회 날이 가까우면 가까워 질수록 아이가 수련회가서 잘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땀 흘리고 샤워안하고 자면 꿉꿉해서 어쩌나, 이는 제대로 닦을까, 잠자리가 바뀌어서 잘 못 잘텐데...모기한테 물리면 어쩌나...아이들가 잘지내야 할텐데..아침에 머리가 산발일텐데 제대로 빗어 묶으려나...하는 갖가지 걱정으로 점점 보내기 심난해졌다. 하지만, 학교 행사에 특별한 이유없이 불참할 수도 없고 걱정속에 수련회날이 됐고 딸아이는 떠났다.
그런데, 딸아이는 이런 엄마의 마음과 전혀 상관없이 아주 밝고 맑은 표정이다. 한방에 몇 명이나 자게 될까, 아침에 기상 나팔, 노래가 울렸을 때 못 읽어 나면 어쩌나 뭐, 이런 걱정만 좀 할 뿐 아이는 엄마와 떨어진다는 것에 그닥 큰 의미가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딸아이를 보내고 텅빈 집으로 들어왔다. 분명히 예고된 자유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할지 동동거리고 있었다. 퇴근한 남편과 영화를 한편보고 일잔으로 목을 축이고 컴백홈하자고 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딱 하나만 지켜졌다. 예매한 영화만 어쩔 수 없이 봤을 뿐 안정되지 않은 신경 탓에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편해야 일잔을 하더라도 할텐데 딸아이가 없는데도 어서 빨리 귀가를 재촉했다.
나만 그럴까... 딸아이 친구 엄마들도 거의 비슷했다. 아이가 집에 없어도 집을 비우지 못하고 처음 주어진 자유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수련회 시간표를 시시때때로 체크하면서 지금쯤 밥먹겠다, 지금은 캠프파이어하겠다...하면서 초조한 시간을 보냈다.

MS Power Point ClipArt



남들이 아이가 수련회를 떠나면 많이 허전하고 남편과 그닥 할 말도 없다길래 난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자유시간인데 연애기분 느끼면서 재미나게 놀면되지...했다. 근데, 막상 딸아이가 1박2일 수련회를 떠나니 남편과 나의 대화는 거의 단절수준이다. 우리 딸 지금 뭐할까...로 시작해 지금 뭐 하겠지...로 끝나는 대화를 반복하는 것 말고 우리 부부에게 특별한 대화꺼리가 없었다.

하룻밤 떨어지는 것도 이렇게 좌불안석인데 아이를 유학보내는 이들은 도대체 무슨 강심장일까.

지인 A네는 남매다. 그 남매가 초등학교 다닐 때 꽤 좋은 조건으로 필리핀으로 유학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A부부는 보내지 않았다. 아이가 내 품안에 있는 것이 고작 길어봐야 20살까진데 대학 들어가고 지들 생활에, 군대에, 연수까지 다녀오는 요즘 젊은 아이들을 생각하면 십대까지 같이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 짧은 시간 아이를 타국에 보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잘될 놈은 한국에서도 잘되고 못될 놈은 외국 나가서도 똑같다는 생각으로 남매를 보내지 않았다. 그 결정이 옳은 결정이었는지는 남매가 커서 판단할 문제겠지만 품안에 자식으로 있는 것이 길어봐야 20년이라는데는 동감한다.

지인 B는 아들을 미국에 이민간 이모네로 호족을 옮기고 시민권을 획득(?)해 그곳에서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대학졸업하고 직장까지 잡았다. 서류상 남남인 아들을 위해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매달 꼬박꼬박 미국에 송금하지만, B와 아들은 살뜰해 보이지 않는다. 초등학교 4학년때면 겨우 11살때였는데 그때 미국에 간 아이가 엄마한테, 아빠한테 무슨 정이 그렇게 많겠냐고 하면 맞는 말 아닌가.
그 아이가 지금 28살이다. 미국에서 직장을 다니고 그곳에서 결혼해 살 예정이다. 그 아이 인생은 한국의 입시제도에 시달리지 않아 편했는지 모르겠지만 B에겐 뭐가 남았을까 싶다.

나도 기회만 있으면 딸아이를 유학시킬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아침 일찍 학교로, 학교에서 학원으로 새벽이 되서야 파리하게 피곤에 쪄든 모습으로 귀가하는 우리네 중고등학생들을 보면서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면서 힘들게 하지 않으려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기회가 있어도 온 가족이 이민가는 것이 아니라면 보내고 싶지 않다. 이제 딸아이 10살이다. 그 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 보낼 때까지라도 복닥거리며 사춘기도 같이 보내고 싶다. 아이가 커가는 걸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싶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더 크다는 것을 딸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새록새록 느낀다. 핏덩어리에 불과했던 아이한테 사랑을 쏟고 정성을 쏟아 같이 한 시간들이 쌓이는 만큼 아이와 나와의 사이에 끈끈한 정도 쌍이는 걸 믿는다.

엄마의 욕심이라고 욕해도 할 수 없다. 능력도 안되지만, 딸아이가 내 품안에 있도록 허락된 시간만큼은 충분히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