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다가 좋다 :: '거북이 달린다' 로또같은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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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가 좋다

'거북이 달린다'를 '추격자2' 쯤으로 생각했다. 김윤석이란 배우가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다. 직업도 형사로 동일하고 스타일까지 거의 달라지지 않은 모양새로 내겐 그랬다.
근데, '거북이 달린다'는 '추격자'와는 다르다. 아주 많이 다르다.

제목이라는 것이 그냥 갖다 붙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란 걸 확실하게 알았다. '추격자'는 내내 음침하고 우울하고 섬찟한 기운으로 시작돼 그렇게 끝났다. 끝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화장실갔다 뒷처리 안하고 나온 것처럼 그런 찝찝함까지는 없었으나 그렇게 게운하지도 않았다. 특히나 하정우표 사이코패스에 완전 몰입해 더더욱 움찔해 김윤석의 뜀박질까지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그리고 김윤석은 먹여 살려야 할 기죽은 가장도 아니었다. 아니 있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양심적으로 사는 인물도 아니었다. 그런 그였기에 딱히 누구 편을 들을 수도 없는 상태로 내내 숨가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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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거북이 달린다'는 다르다. 거기다 보기 거북하지 않은 탈옥수 송기태(정경호)는 필성에겐 상대 못할 적수같지만 조필성의 굴욕앞에 추격자의 하정우같은 거대한 존재감은 아니다.

탈옥수 송기태(정경호) - 네이버



'거북이 달린다'가 유쾌상쾌통쾌하다고 하면 완전 뻥이지만, 로또같은 한방은 있다.
토끼가 거북이를 이긴것처럼 그렇게 우리의 주인공 필성(김윤석)은 마침내 굴욕 가장에서 위풍당당 가장으로 복귀한다. 그 어떤 해피엔딩보다 뿌듯한 엔딩이었다.

추격자의 김윤석은 가족이 없었다. 아니, 가족이 있었는지 어쩐지 가족에 대한 존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가족이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의 차이는 하늘 땅만큼이다.

남자에게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의무가 주어지면 아무 의무 없을 때와는 완전 달라지는 것이다. '거북이 달린다'의 조필성(김윤석)은 5살 연상의 아내와 두 딸을 가진 가장이다. 그냥 5살 연상도 아니다. 말 한번 예쁘게 나오지 않는 누나를 모시고 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고 거기에 딸들은 심하게 애 어른 같은지라 아빠도  딸에게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 만원짜리 내미는 아빠한테 '아빠나 써'하고 도로 내미는 딸아이를 보면 박장대소했다.
아니, 그냥 웃기엔 뭔가 서글픔마저 있을 만큼 '거북이 달린다'는 내내 조필성(김윤석)이 최대한 어떻게 더 심각하게 망가지나를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저렇게 굴욕에 굴욕을 겪으면서도 잡초처럼 일어나야 하는 힘의 뿌리는 누나같은 아내, 애 어른 같은 두 딸들일 것이다. 그 딸과 아내를 위해 그는 걷는 것도 힘드면서 뛸려고 최선을 다한다.

굴욕가장 조필성(김윤석 분) - 네이버


그 최선이 언제나 핀트가 조금씩 어긋나 웃음을 주지만, 마냥 웃기엔 속이 편하진 못하다.
처음엔 인간극장 보는 줄 알았다. 그 만큼 김윤석이란 배우가 아니면 조필성이란 인물이 탄생하지 못했을 정도다.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닌 그냥 생활하는 것을 찍은 듯한 조필성이 굴욕은 눈물겹도록 처절하다.

그렇게 치밀하지 않아도, 하는 것마다 조금씩 핀트가 안맞아도 그는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애쓴다. 그의 노력과 달리 상황은 점점 나빠지지만 아무리 쥐잡듯 잡았어도 그래도 가장 어려울 때 조필성을 믿어준 것은 역시 아내(견미리)뿐이다. 그래서 그는 가장의 힘으로 굴욕을 이겨낼 수 있었고, 그 굴욕의 시간을 관객인 나도 참고 견딜 수 있었다. 너무 긴 굴욕에 답답함이 밀려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을 정도였다.

조필성의 아내(견미리) - 네이버

굴욕의 시간이 너무너무 길었기에 그 시간이 끝나고 그가 당당하게 가장으로 등극했을 때 눈물나게 기뻤음이다.

우리네 가장들의 고단함이 조필성이 고단함과 뭐가 그리 다르겠는가. '거북이 달린다'엔 늦게 천천히 가더라도 마지막엔 웃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