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건망증일까.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까먹는 것은 아닐까.
아이낳고 기억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지만 그렇게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딸아이 치과 정기점진 예약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잊지 않기 위해 탁상달력에 메모를 해놓고도 부족해 형광펜으로 색칠까지 해놨었다.
그날 오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00치과입니다."
"어머!"
"잊어버리셨어요? 그런 줄 알고 전화드렸습니다. 다시 예약 잡으세요."
완전하게 잊고 있었다. 그날 오전까지만 해도 아이가 학교에서 오면 간식 먹이고 갈려고 했는데 말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메모를 해 놓고 있어도 깜빡깜빡할 때는 내가 무섭기까지 하다.
자주 만나는 B엄마는 나보다 더한 건망증의 소유자다.
약속시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다.
"늦어?"
"어, 우리 보기로 했어?""
뭐, 이런 식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약속 전날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이것이 일이라면 아주 심각한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지인 A는 초등학교 방과후 컴퓨터교실 선생님이다.
A는 새로 부임한 인턴선생님과 함께 근무한다. 그 인턴선생님은 아이 둘 낳고 결혼하고 10년을 넘게 전업주부였다 일을 시작한 초보 선생님이다. 근데, 이 선생님이 영~초보같지가 않은 것이다.
인턴선생님이 해야할 일을 자꾸만 깜빡깜빡하는 통에 A는 혼자 근무할 때보다 더 바빠졌다.
"선생님, 교재신청했어요?"
"어머!"
"선생님, B군 어머니께 전화드렸어요?"
"어머!"
"선생님, 본사에 팩스 넣으셨어요?"
"어머!"
뭐, 이런 식이다. 일을 분담해서 하라고 인턴선생님이 필요한건데 이 선생님은 수업도 제대로 못하는데다 잔무까지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 둘 낳고 건망증이 심해져서 그렇다고 매번 미안하다고 어쩔 줄 모르고 넘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워 어쩌겠나 싶었더랜다. 근데, 그 건망증이 한 곳에 집중된 것이 보이더란다.
이를테면 아이 치과 예약이라든가, 아이 학교 준비물 같은 것은 절대로 잊지 않고 챙기면서 유난히 학교에서만 깜빡 증세가 빈번하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혹,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일이 아니라면 전혀 상관 없을텐데 접수가 오늘까지 마감인데 놓쳐서 못하는 경우까지 생기니 그냥 건망증으로 넘어가기엔 심각했다.
동창모임을 잡아 놓고 깜빡해서 잊는다던가, 방금 사용했던 가위를 어디에 뒀는지 몰라 찾는다던가,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왜 열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것과는 좀 다른 것으로 뵌다.
딸랑 둘이 근무하는데 한 사람이 그런 식으로 일처리를 제대로 못하니 A의 일이 많아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이들 챙기는 것은 철저하게 빼놓지 않고 챙기면서 일하는 것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분명 일은 아이들보다 중하지 않다고 생각해서가 아닐까.
아이 낳고 건망증이 생겼다는 말에는 토를 달고 싶지 않지만, 건망증도 이겨내기 위한 방법은 분명있다. 말 그대로 정신줄 놓지 않기 위해서 휴대폰의 알람기능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아닐까. 물론, 그것도 아차! 하면서도 금방 까먹을 때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