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B을 처음 만났을 땐 상당히 조심성 많고 다른 사람을 많이 배려하는 사람으로 인식됐다. 그만큼 나도 그 사람은 배려하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은근히 피곤하긴 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즐겁게 커피마시고 헤어졌는데 저녁때 문자가 온다.
'아까 내가 한 말 때문에 기분 상한거 아니니?'
'아까 한 말은 맘에 담지 말어'
이런 식이다. 생각도 나지 않는데 무슨 말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고 할까, 뭘 마음에 담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은근 피곤한 일이다. 그렇게 되니 매번 이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이래도 괜찮을까, 이 말에 상처받지 않을까...하면서 지치기 시작했고, 그만큼 사이가 소원해졌다.
이렇게 다른 사람에 대한 지나친 배려가 피곤할 때가 있다. 그저 내 마음 편하겠다고 다른 사람을 채근하고 보채는 것이 굳이 배려라고 해야할까 싶은 생각도 든다.
'결못남'의 조재희(지진희)는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불편해 하면 자신도 불편해하고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것도 다른 종류의 배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보통 못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불편함을 불편해 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내 맘대로는 아니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걸 피곤해할 뿐이지 다른 사람한테 피해 주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옆집 상구를 맡아 돌봐 줄 때도 상구를 좋아하지 않아도 일단 맡았으니 끝까지 책임완수를 하기 위해 대충 하는 것도 아니고 잘한다.
조재희 사무실의 윤실장(양정아)는 진실게임에서 '회사를 언제 옮기겠냐'는 질문에 그랬다.
'조소장이 나를 배신하지 않으면 옮기지 않는다'
양정아의 한결같은 조재희에 대한 사랑은 본인은 모른다. 그만큼 아닌 척 하면서 조재희를 사랑하고 그를 해바라기 하지만 그는 전혀 모른다. 윤실장을 배신하지 않을꺼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조재희의 믿음은 윤실장이 말하는 '배신'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세심한 배려가 아니라 내가 불편하지 않는 한도 내의 배려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사무실의 익숙한 그녀에게는 더 이상 불편해 하지 않으니 그녀의 마음을 모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그는 '고맙다'에 익숙하지 못하고, 남을 배려하는데 익숙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한테 피해는 주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도 많이 서툴다. 사탕발림 같이 예쁜 말만 골라하지 못하는 재주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의 배려는 따뜻하지 않아도 꾸밈이 없어 좋다.
결혼시키지 못한 엄마, 아빠의 말도 안되는 생때에 장문정과 여행을 가게 되자 그는 방학때나 볼 수 있는 계획표를 정성스럽게 짠다. 그렇게 계획적인 여행도 꽤 괜찮겠다 싶을 정도로 그의 계획은 완벽해 보인다.
회를 즐기지 않는다는 장문정을 위해 식사를 따로 하자고 하기도 하고, 우겨 같이 간 횟집에서는 잘 먹지 못하는 회를 즐길 수 있도록 하고 그녀가 맛있게 먹는 걸 즐기기도 한다. 장문정을 위해서라고는 할 수 없어도 조재희식 이벤트는 감동을 주기 위한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테이블을 만들고, 하얀 천으로 멋스럽게 테이블을 덮고 거기에 예쁜 안주에 와인까지 물론, 여기서도 조재희는 장문정을 배려하지 않는 듯 보이긴 한다. 먼저 자신의 잔을 채우는 우를 범하긴 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그렇게 하고자 했던 것이 정말 몰라서 그랬다는 것이 보인다.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고 굳이 생각하지 않는 그의 방식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미리 모기약을 쳐주고 조약돌 소리를 즐기며 잠자리에 들 수 있도록 하는 세심한 센스도 있다.
예쁜 말로 포장하지 못하는 특별한 재주와 혼자서 심하게 잘놀고 즐길 줄 아는 그이기에 더더욱 여자들에게 이상한 사람, 편협한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사람됨만으로 평가한다면 그는 꽤 괜찮은 남자다. 초식남자라고 하기엔 여자들과 삐걱거리며 지낸다는 것이 걸림돌인데 그 외에는 모든 조건이 꽤 초식 남자에 근접하다. 같이 여행을 가도 별일 없는 그러면서도 그만의 서투른 방식의 배려를 받는 것도 익숙해지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런 남자가 나만을 위해서 노래를 불러준다면 아무리 음치에 박치여도 감동아닐까.
쿨한 윤실장은 외사랑에 상처 받겠지만, 조재희의 서투른 연애가 시작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