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다가 좋다 :: 배우에게 다작이 독일까, 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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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가 좋다

미니시리즈는 16부작, 20부작 정도로 방송되고 그러면 적어도 4주를 넘게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출연 배우에 대해서 많이 적응되고(?) 익숙해진다. 그의 직업이, 그의 패션이, 그의 가족관계, 성격같은 모든 것이 그 배우와 떨어뜨려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등장 인물속 그 사람으로 생각하고 시청한다. 그렇게 변호사란 직업에, 회사원에, 단아한 패션에 익숙해져 있는데 갑자기 펑키스타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능력있고 돈 많고 잘난 인생이 갑자기 사채빚에 쪼들리는 찌질한 인생으로 변하는데 너무 짧은 기간은 뭐랄까 혼동스럽다. 드라마가, 영화가 끝나자 마자 다른 영화에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것은 분명 잘나가는 시절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겠지만 뭐랄까 식상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캐릭터에 몰입하는데 전작의 캐릭터가 방해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 윤상현
'내조의 여왕'에서 그는 꽤 멋진 회장님 아들로 분했다. 철없는 아들인 것 같으면서도 사랑 없는 결혼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남자로 천지애의 백마탄 왕자로 보기만 해도 흐믓했다. 그리고 석달도 되지 않아 '아가씨를 부탁해'에서 그는 엄마 병원비때문에 제비생활을 하고 사채빛으로 쪼달리고 대리 운전으로 언제 5000만원을 모으나 고민하는 생활인으로 분한다. 여전히 복장 상태는 회장님 아들일때와 그렇게 크게 별반 다르지 않고 헤어스타일까지 비슷한데 말이다.

'아가씨를 부탁해' 윤상현 - KBS

- 이정길
중년배우는 한정되어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섭외하는 배우만 섭외해서 그럴까. 아줌마 아저씨 엄마 아빠는 이쪽이나 저쪽이나 거의 비슷하다. 이쪽에서 커리어 아줌마로 회사를 경영하기도 하고, 이쪽에선 찌질 궁상으로 생활하기도 어려운 상태도 나오기도 한다. 방송국으로 옮겨 다닐 때마다 오늘은 허름, 내일은 반짝 이렇게 적응하고 연기하기에 본인들은 상관없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비중이 적은 아빠 엄마 아줌마 아저씨라고 해도 몰입이 쉬운 것은 아니다.
'파트너'에서 자식이고 뭐고 상관없이 냉철한 로펌의 대표로 분했던 이정길은 '아가씨를 부탁해'에선 철없는 손녀한테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는 할아버지로 분한다. 안경너머로 보였던 냉철함과 철저함의 이미지를 그렇게 간단하게 던져버리고 후덕한 미소를 지은 할아버지라니. 재벌가의 비위를 맞추느라 자식을 살인자로 몰아도 상관없는 매몰찬 아버지가 재벌가의 주인이지만 손녀에겐 한없이 약한 할아버지로 변했다.

'파트너'의 냉철한 이정길 - KBS

- 문채원
'찬란한 유산'에서 그녀는 답답하리만큼 우울하고 속내를 알 수 없는 꿍한 캐릭터였다. 안티가 코디인가 싶을 만큼 대충 입는 은성이게 비해서도 많이 딸리는 패션을 선보여 그녀의 답답함에 한층 더 보태기까지 했다. 그런 그녀가 바로 '아가씨를 부탁해'에서 구두 디자이너 여의주 역을 맡았다. 신인이 이어 다음 작품에 출연할 수 있다는 것은 본인에게는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밝고 명랑해 보이려 하지만 여전히 우울해 보이는 얼굴에, 머리만 양갈래로 땋고 생기 발랄하게 보이려 점프수트에 최대한 활달해 보이려 애쓰는 듯 싶지만 아직 승미같다.

'아가씨를 부탁해' 문채원 - 아시아경제

- 이청아
'그바보'에서 구동백의 동생 구민지로 분했다. 구동백의 동생일 수 밖에 없는 캐릭터로 착하고 성격좋고 그러면서도 뒤끝 없는 밝은 동생역으로 많은 비중은 아니었지만 꽤 집중됐다. 집에서 산림하다가 새언니 덕분에 커피전문점을 운영하게 된 그녀가 '다함께 차차차'에선 능력있는 애니매이션PD로 분한다. 변하지 않은 헤어스타일에 레이어드룩이다. 성격이 조금 차분해지고 어두워진 것만 빼면 그녀도 이미지 변신과는 상관없어 보인다.

'그바보','다함께 차차차'의 이청아 - 비스플레이스


배우라고 작품마다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드라마에 새로운 캐릭터로 분할 땐 적어도 그 전에 했던 작품의 이미지와는 달라야 한다고 본다. 똑같은 헤어스타일과 비슷한 코디로 여기저기 왔다갔다한다면 식상할 수 밖에 없지 않나. 작품하나 출연하고 몇 년씩 쉬었다 다시 고르고 골라 한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품이 끝나고 그 작품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 작품의 배우를 다른 캐릭터로 본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