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싫을 때, 공부하기 싫을 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할 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해줬으면 하고 바래본 적 없는가. 특히나 화장실 급할 때 나 대신 가줄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운전하기 싫을 때 나 대신 누가 운전해 줬으면 좋겠다고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나를 대신한 누군가를 있으면 편하지 않을까로 시작한 '써로게이트', 발단은 재밌다.
'surrogates : 대리, 대리인' 사전적인 의미다.
문제는 일하기 싫을 때 나는 놀고 로봇이 대신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로봇의 몸을 빌어 일을 하는 것과 똑같다. 그 로봇이 다치면 나도 다치고 그 로봇이 아프면 같은 고통을 느낀다. 몸은 집에 있지만 대리 로봇을 통해 똑같이 일하는 것이다. 분명 몸은 편한지 몰라도 머리는 여전히 복잡하고 힘들다. 뒤집어 생각하면 내가 나가서 일하지 않을 뿐이지 내 머리는 똑같은 피로감을 느끼고 똑같이 일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대리 로봇은 비장애인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며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장애를 갖은 사람들이 마음껏 움직이고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도록 그렇게 좋은 뜻으로 시작됐지만 대리 로봇에 의존하다보니 활동하는 사람이 없다. 애는 위험해서 집밖으로 안나가고 나이들면 몸이 힘들어서 안나가고 그렇다고 젊은 사람이 활동 인구에 포함되는 것 같지도 않다. 그저 어두컴컴한 집에서 대리 로봇과 교신하며 온 신경을 집중해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 밖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오히려 대리 로봇에 지배당한 인간의 나약한 모습이 보여진다.
충전만 하면 살 수 있는 로봇이니 살찔 걱정도 없다. 내 마음대로 고르고 내 마음대로 꾸밀 수 있다. 대리 로봇을 통한 대리만족은 대리 로봇의 성형 수술도 가능하게 한다.
'써로게이트'는 쉽게 즐길 수는 없다. 두더지 같은 삶은 살며 태양아래 적응하지 못하는 삶으로 전락한 인간의 모습은 안타까우면서도 섬찟하다. 아무 생각 없이 즐기기엔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가 무거울 뿐 아니라 그렇게 가볍게 즐겨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지루하지 않다.
브루스 윌리스는 거의 민머리가 다 된 중년을 훨씬 넘어선 중후함까지 갖춘 나이가 됐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는 매력을 잃지 않았다. 주름이 제대로 안착된 배우라고나 할까. 그의 사생활과 전혀 상관없이 영화속 그는 여전히 '다이하드'의 존 맥클레인처럼 불사조 같은 모습으로 보여지지만 맥클레인처럼 유머가 넘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는 브루스 윌리스란 배우의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눈 돌아가는 최첨단 기기들의 전시회를 보는 듯 그렇게 영화는 화려하다. 화려하면서도 가볍지 않고 그러면서도 뭔가 생각하게 만드는 '써로게이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