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신궁의 솜씨로 덕만의 가슴팍에 있는 소엽도에 정확하게 명중되어 덕만쪽으로 전세를 뒤엎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실소가 나오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으나 그럼에도 드라마라서 다큐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미천한 신분으로 신국의 최고 권력자가 되기까지 미실의 여정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을텐데 그 어떤 위기도 잘 넘겼던 그녀가 어제 방송에서는 신국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왕이 되었어도 괜찮았겠다 싶은 아쉬움을 남기고 자결했다.
'사담함을 연모했던 마음으로 신국을 연모했다. 연모하기에 갖고 싶었을 뿐'이라며 덕만의 합정을 거절하는 장면은 지금까지 그녀의 행보와는 다른 뭐랄까. 완전한 신국의 권력자이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신라를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이다. 사람이 죽으려면 변한다더니 그런 것인가 싶을 정도로 그녀는 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여길찬이 미실을 돕기 위해 병사들을 끌고 오지만 미실은 회군을 명령한다. '국경을 흔들게 되면 미실이 지는 것이다. 이제는 그만 하려고 한다'
그녀의 마음을 굳이 죽기 전에 표나게 들어내야 했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녀는 신국을 연모하는 마음으로 모든 걸 포기했다.
"이제, 그만할래요, 다…" 그 말이 주는 함축적인 의미까지 파악하지 않더라도 왕이 되고 싶다고 갈망했던 그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미실은 설원공에게 '싸울 수 없으면 지키면 되고 지킬 수 없으면 후퇴하면 되고 후퇴할 수 없으면 항복하면 되고 항복할 수 없으면 그날 죽으면 그만이네.... 오늘이 그날입니다' 라고 한다. 왜 약해졌느냐는 설원공의 말에 그녀는 '약해진 것이 아니다. 이것이 마지막 실행이다…. 설원공께 미안합니다.'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는 절제된 그녀의 감정표현에 울컥했다.
비담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그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는 자세로 그렇게 숨을 거뒀다. 합정을 제의했던 덕만을 뒤로 하고 아들 비담에게까지 마지막까지 약한 모습 한자락 비추지 않았던강한 그녀의 모습 그대로 그렇게 퇴장했다.
미실의 화려하면서도 아쉬운 퇴장이었다. 역사 속 미실이 실제로 그랬든 그렇지 안았든 상관없이 고현정은 미실이란 인물을 재탄생 시켰을 뿐 아니라 '선덕여왕'은 미실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녀가 있었기에 덕만의 존재감도 있을 수 있었다. 심하게 아름다운 퇴장이지만 딴지 걸고 싶지 않다. 그녀가 지금까지 '선덕여왕'에서 보여준 섬세하면서도, 속내를 알 수 없는, 때로는 가차없는 판단으로 매섭고 때론 더할나위 없이 푸근한 모성애로… 말 그대로 팔색조같은 그녀에게 걸 맞는 최후였다.
안티 미실까지 미실의 팬으로 끌어당긴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고현정이란 배우의 새로운 발견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겠다.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방송인으로 배우로 활동하다 재벌가의 며느리로 아이 둘의 엄마로 살다 이혼했다. 그리고 컴백한 그녀는 완전한 배우로 돌아왔다. 인생의 쓴맛 단맛을 모두 끌어낸 것 같은 미실은 고현정 연기 인생에 전환점이 될 듯 하다.
미실의 퇴장은 예고된 것이었으나 '선덕여왕'이 종방한 것처럼 많이 허전하고 아쉬운 마음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