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분배를 위해 힘의 균형을 위해 외로울 수 밖에 없는 군주를 보여주기 위함일까. 현명한 군주를 보여주기 위함일까.
폐하(선덕여왕)은 힘들다. 비담의 술수를 알면서도 대의에 어긋나지 않다는 걸 알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금관계를 깨뜨리고자 아무도 모르게 고뇌한다. 유신이 돌아오길 내심 바랬고 그 유신을 믿으면서도 모양은 빠지지 않게 곁에 두어야 하는 군주의 고민이다.
신국을 위한 그의 충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모양새를 갖춰야 하는 군주의 고민이라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이야기가 흥미도 긴장도 떨어진다.
비담의 카리스마는 그의 어머니 미실에 비해 아주 많이 떨어진다. 미실과 같은 참모에 미실이 앉은 자리에 앉아 조용조용하게 감정을 숨기는 것까지는 비슷한데 뭐랄까. 진짜같지 않은 어설픈 느낌이다.
비담만의 독특한 카리스마를 만들었다면, 미실을 닮긴 했으나 미실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줬더라면 좀 더 몰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검정색 깃발 부채를 들고 다닐 뿐 그는 특별한 것이 없다. 그저 조용조용 말하는 것, 비웃는 듯한 웃음을 흘리는 것 말고는 그만의 카리스마는 아주 많이 부족하다. 그가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카리스마를 만들었다면 미실의 빈자리가 어느 정도 메우어지지 않았을까 싶은데 말이다. 김유신을 궁지에 몰아 넣는 것까지는 어찌했는지 모르겠으나 김빠진 사이다같다고나 할까. 배경음악만 긴장을 더하고 더 이상 긴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래도 미실의 빈자리 덕에 선덕여왕은 빛이 난다. 양쪽으로 분할이 되었던 빛이 한곳으로 모인 느낌이다. 여인이 아닌 단지 폐하일 뿐이라는 그녀는 비담의 투정을 지능적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까지 겸비한 선덕여왕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삼한일통을 이루기 위해 그녀는 김유신도 비담도 적절하게 활용하려는 '그 어느 누구도 나를 가질 수는 없다. 내가 왕으로 존재하는 한.." 그녀의 절제된 듯 하면서도 왕의 권위가 살아있는 연기는 미실의 그것과는 다른 위엄이 있을 뿐 아니라 그릇의 크기가 달라 보인다. 그에 비담도 흥분하게 되는 것이다.
'미실이 부러웠던 것은 왕이 아니어서였다. 왕이 아니기에 사랑하고 결혼하고 그렇게 세를 키울 수 있었지만 나는 왕이고 내가 연모하면 분쟁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며 연모하는 비담을 깔끔하게 정리한 그녀다. 감정을 내보이지 않으면서 유신에 대한 믿음 또한 저버리지 않은 군주의 모습이다. 하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선 아쉽긴 하다. 비담, 유신과의 러브라인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들의 연모하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기대됐는데 이제 그마저도 똑 잘라버린 폐하 덕분에 보지 못하게 됐다.
떨어지는 시청률을 계백을 등장시켜 잡아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신통치는 않아 보인다. 우직한 유신의 충정과 우리에게도 이런 멋진 여왕이 있었다는 것이 흐믓하고 행복하기는 하나 그것만으로 채널 고정하기엔 뭔가 부족함이 있다.
거기다 '선덕여왕'에 신종플루의 악재까지 겹쳤다. 비담이 확진판정을 받고 촬영 스케줄에 비상이 걸렸다는 기사를 읽은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이번엔 알천량이 확진판정을 받았다. 비담이 다시 촬영장으로 복귀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빈자리는 그렇지 않아도 위태로운 선덕여왕에 보태기를 할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