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다가 좋다 :: 그래도 명절땐 아픈 거 보다 일하는 게 낫다
노무현 대통령 배너

수다가 좋다

명절 때 해외 여행 가는 사람들, 명절 때만 유난히 바쁜 직업을 가진 사람들, 명절 때 맞춰 아픈 사람들을 보면 유난히 부럽고 필자도 한 번 그래봤으면 싶었더랬다. 결혼하고 10년을 꼬박꼬박 명절이면 시댁에 가고 차례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숙제같은 일을 한번이라도 빼먹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아니,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왜 명절 때만 한가할까, 왜 우리 시집은 명절 때 여행가면 안될까, 내가 아니어도 다른 형님들이 하시면 되겠지 하고 미루는 것도 필자에겐 통하지 않는다. 하나 밖에 없던 형님은 필자가 결혼한지 3년쯤 됐을 때 급작스럽게 젋은 나이로 돌아가셨다. 졸지에 외며느리가 되어 버려 누구한테 미루지도 못하고 모든 일을 필자의 차지가 되버렸다. 그러니 더더욱 여행을 꿈꾸는 것도, 누구한테 미루는 것도 불가능한 현실이다. 그런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는 오직 아퍼서 병원에 입원하는 것 밖에 없겠다 싶기도 했다. 그저 명절때만 살짝 주사 바늘 많이 꼽지도 않고 그렇다고 수술도 하지 않지만 그래도 병원에 하루나 이틀정도만 입원해야 하는 그런 병은 없을까 상상했다.
근데, 이것이 상상만으로 끝낼 일이 아니라 상상도 하면 안될 몹쓸 상상이라는 것을 이번에 지인을 통해 배웠다.

MS PowerPoint ClipArt


지인A는 며느리가 셋이다. 세 며느리중에서 막내고 시어른도 일찍 돌아가셔 아무도 안계신다. 그저 삼형제 모여 차례 지내는 것이 다다. 시집에 가서 며칠씩 자고 일을 하고 푸근히 질리게 명절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명절 날 아침에 모여 차례 지내고 밥먹고 헤어지면 끝이다. 가족이 모여 함께하는 시간이 고작 3~4시간이면 모든 명절 행사가 끝나는 것이다. 남이 만들어 놓은 음식 가서 먹기만 하고 오니깐 막내 며느리는 좋겠다 싶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큰 며느리는 장소 제공을 한다는 이유로 나물, 국, 밥만 준비한다. 나머지 과일, 고기, 떡, 전은 나머지 두 동서 몫이다. 과일과 고기, 떡같이 돈은 많이 들지만 노동력은 적게 드는 것과 노동력이 많이 드는 전으로 나누어 준비를 하는데 추석때 과일과 고기, 떡을 준비했으면 다음 설땐 전을 부쳐와야 한다. '수상한 삼형제'의 며느리들이 그렇게만 일을 분담해서 한다면 억울하다고 할 며느리도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분명 깔끔해 보이는 분담이기는 하지만 어찌보면 너무 깍쟁이같기도 한 분담이다. 어찌되었건 지인 A가 이번에 맡은 일은 전을 부쳐가는 것이다.
근데, 명절을 일주일 앞두고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고 일어나지도 앉지도 못할 만큼 아팠다. 동네 정형외과를 다녀와도 전혀 차도가 없자 척추 전문 병원으로 갔고 MRI를 찍고서야 디스크 파열이란 걸 알아냈다. 디스크 파열로 인한 고통을 간단한 시술과 주사요법으로 치료가 가능할 줄 알았고 하루면 퇴원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하루 이틀 입원기간이 길어지면서 명절이 내일인 지금까지다. 오늘 2차로 수술까지 받고 병원에 계속 입원 중이다. 신경을 누르고 있는 디스크조각을 제거하는 수술을 2차로 받은 것이다.

앉아 밥을 먹을 수도 없을 만큼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지인 A를 보면서 몹쓸 상상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됐다. 며칠 고되고 말지 저렇게 몇 백만원하는 병원비도 병원비지만 며칠 사이에 얼굴이 못쓰게 된 A를 보면서 반성 많이 했다. 이번 설에 전을 부치는 노동력을 제공하지는 않았지만 A는 그보다 몇 배는 더 힘들게 명절을 보내게 됐다.

도대체 명절을 왜 만들어서 이렇게 며느리들을 고생시키나 싶었는데 그래도 힘들어도 같이 모이는 것이 병원에서 홀로 보내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은 마음이다. A가 어서 쾌차하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