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의 뻔뻔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인간적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구석이 다분히 많은 여인이다. 말도 안되는 거짓말로 본인을 포장하고 김건강과 결혼했다.
그냥 그러기만 했으면 되는데 몽땅 다 거짓말이었다. 학벌도, 80평 아파트도, 처녀 행세도, 아들이 있다는 것까지 보이는 거 빼고 다 거짓말이었다. 그런 거짓으로 자신을 씌우고 시어머니, 시아버지 될 사람을 구워 삶듯 하는 여우 짓을 하고 동서인 도우미를 말리는 시누이보다 더 얄미운 동서로 눈꼴 시린 짓을 반복하며 보는 시청자의 속까지 뒤집었다. 엄밀히 말하지 않아도 분명 사기결혼이다. 그러더니 그녀의 거짓말이 하나씩 들통났다. 그녀의 태도는 그저 남편 김건강한테 충성하겠다는 것만 바뀌었다. 받아주지 않는 시어머니의 구박이나 동서가 자신의 아들 종남이를 조금이라도 섭섭하게 하면 대번에 태도를 바꾸어 충성이라는 단어와 상관없는 태도를 보인다.
사람이 기본적으로 밉상인 사람람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엄청난 인물을 만나면 아무리 자라온 환경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런 인물이 정말 있을 수 있을까 싶다. 거짓말에 거짓말을 반복하고 진실이라고는 양심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 볼 수도 없는 듯 했던, 엄마같지도 않은 여자가 바로 엄청난이다. 지금이야 종남이에 대한 애절한 마음으로 어쩌지 못하는 듯 싶지만 처음부터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김건강하고 노느라 아는 언니집에 맡긴 종남이를 찾아가는 것조차 뜨문뜨문했던 여인 아닌가. 아이와 함께 계획적으로 알뜰살뜰 살아보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하루하루 카드 돌려막기나 하며 사채빚까지 써가며 그렇게 빛 좋은 개살구를 유지하는 것도 모잘라 권위만 내세우려 하고 자신은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는 캐릭터다. 그녀가 시아버지와 남편 김건강의 면죄부로 다시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종남과 함께 살게 된 것까지도 이해 불가인데 어떻게 그녀의 태도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난해졌다. 그저 받아주지 않는 시어머니한테는 더 이상 아부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달라졌다면 달라졌을까.. 먹고 살겠다고 설이고 뭐고 팽개치고 그저 영업하러 다니는데 모든 신경을 쏟느라 종남이에 그저 불쌍하고 안타까운 마음만 가지고 그저 우리 불쌍한 종남이~면 다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설 음식 준비하는 것은 큰며느리가 왜 해야하냐고 눈 똥그랗게 드는 어이없음을 보이더니 큰어머니를 내세워 같이 놀아주지 않는 이유만으로 손지검까지 하는 말도 안되는 행태까지 보이고 있다. 자신이 필요하면 큰 며느리, 큰 어머니를 자처하고 자신이 불리하면 그게 뭐라는 태도다. 그 어떤 책임도 의무도 다하고 싶지 않고 모든 사실이 밝혀진 설 자리 없어진 이 상황에서도 그저 받고만 싶어한다. 뿐인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아들과 잘 해보겠다고 놀이동산까지 간 남편 김건강이 종남을 잃어 버렸다고 '오빠 자식이었으면 그렇게 했겠냐'고 오히려 물속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노라는 식의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도 분가해 살자는 도무지 배려라는 단어를 잃어 버렸다고 해도 염치라는 단어도 실종된 그녀다. 그렇게 모성애가 강했던 여인도 아닌 것 같은데 모든 비밀이 밝혀지고 나서야 모성애가 되살아 놨는지 도무지 개연성 없는 인물에 뻔뻔하기까지 한 그녀의 태도가 엄청난이란 캐릭터를 더더욱 밉게 만든다. 그런 그녀 덕분에 종남이는 더더욱 안타깝고 불쌍한 처지가 되가고 있다.
밉상 시어머니의 태도가 제일 속시원 할 정도로 그녀에게 너무 쉽게 면죄부가 주어진 것은 아닌가 싶다. 그녀가 좀 더 염치가 있었으면, 좀 더 의무와 책임도 다하려는 태도가 있다면 좀 더 엄청난이란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 듯도 한데 아무리 바람까지 휭하니 불어주는 추운 날 종남이와 함께 집을 나서도 하나도 불쌍한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그녀가 자초한 캐릭터의 결과물이다.
그녀가 다시 어떤 면죄부로 다시 집으로 들어오게 될지 모르겠지만 염치를 아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그런 캐릭터로 진화되었음 하는 바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