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밥숟가락 놓으면 바로 나가야지, 집구석에서 빈둥되고 있으면 이혼이나 당하지' 전과자 부인의 말에 뜨끔해 하는 김순경 남편이다. 40년을 넘게 대면대면하고 살다가 퇴직하고 손잡고 놀러 다니자고 하는데도 전과자 부인의 말씀은 냉랭하다. 생각도 하기 싫다. 어서 짤리기 전에 나가란다.
처음부터 이렇게 대놓고 구박을 예상할 수 있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퇴직하기 전엔 그 누구보다 살뜰하며 금실 좋던 부부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이웃집 웬수'의 윤지영(유호정)의 아빠도 퇴직한지 채 한 달도 안됐다. 퇴직하고 몇 날은 아주 행복했다.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그렇게 하루 종일 같이 같은 공간에 있으니 아무리 사이 좋은 부부라고 하더라도 그 좋은 관계가 유지가 될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얼마되지 않아 재혼하고 지금까지 헌신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살던 아내가 제발 꽁무니 좀 그만 쫓아다니라고 소리치게 됐다.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야 하는 아내 입장에선 당연한 답답함을 토로할 수 밖에 없어 보이니 아내를 탓할 수도 그렇다고 퇴직하고 힘없어진 남편의 초라함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회사에 다니느라 아침 일찍 나가 저녁 늦게 들어 오던 남편이 하루 종일 같이 있어 주면 좋은 것보다는 불편한 점이 더 많은 수 밖에 없다. 친구들이라도 만날려면 남편 점심을 봐주고 나가야 하고 세끼중에 한끼라도 걸치지 않고 외출하기란 쉽지 않으니 당연히 신경쓰이고 불편할 수 밖에 없다. 남편이 안타까운 것도 하루이틀이란 말이다.
퇴직하고 아내한테 구박받고 아내 눈치 보는 남편은 대한민국엔 실제로 아주 많다. 퇴직하고 아내한테 사랑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변 퇴직한 분들의 모습이다.
필자의 친정 아빠는 바쁘게 경제활동을 했을 때도 그랬지만 퇴직하고 한가한 지금도 주방에서 뭔가를 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한다. 그저 친정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친정엄마가 깎아낸 과일을 드신다. 엄마가 허리병이 나기전엔 청소도 안했는데 이제 그나마 청소는 가끔 도와주신다는 것이 그래도 많이 발전하신 모습이다. 드라마속 유지영(이호정) 아빠처럼 돈,돈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돈을 벌지 않는다는 것이, 있는 돈 가지고 쓴다는 것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듯 하다. 그러니 꼭 드라마속 퇴직한 아빠의 모습만은 아니다.
지인 A의 친정 아버지는 상당히 자상하시다. 어머니가 외출중이면 밥도 하고 국도 끓이고 집안 일을 몽땅 하신다. 뭐, 외출중이 아니라고 해도 어머니가 계실 때도 청소부터, 음식물 쓰레기 같은 것은 어머니 손이 닿기도 전에 아버지가 다 하신다. 그러면 어머니한테 예쁨(?)을 받느냐…. 딱히 그렇지 않다. 깐깐하게 집안 일 하나하나 신경쓰며 장보는 것, 반찬까지 참견하는 모양새가 절대 어머니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비 일이라고 하실 때가 반찬도 좋았고 아버지를 아버지로 대접했던 것 같다고 A는 말했다.
지인 B의 친정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은 어른이시다. 같은 퇴직자임에도 불구하고 집안 식구들은 퇴직을 했는지에 대해서 별로 인식하지 못할 만큼 바쁘시다.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취미생활이 바쁘다. 그 어른은 골프치러 동남아로 한달에도 몇 번씩, 한국에 있어도 친구들 만나느라 골프치러 다니느라 절대 집에 있을 시간이 적다. 그러니 당연히 B의 친정 어머니는 아버지를 미워하기는 커녕 퇴직하기 전처럼 아버지를 존경하고 집에서의 위상도 전혀 변화가 없다.
위 세가지 경우를 보면 어떻게 하면 퇴직하고 예쁨 받는 아버지로 남을 수 있는지 알 듯 하다. 결국은 돈이 문제다. 그렇다고 노후에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어르신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취미생활이 답이 되지 않을까 싶다. 꼭 골프가 아니어도 돈이 적게 드는 취미생활이 있다면 분명 갑자기 여유로워진 시간을 집에서만 보내지 않아도 될 것이고 그러면 퇴직하고도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지 않게 될 것이니 그 만큼 아내한테 덜 구박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오죽하면 삼식이라는 말까지 생겼겠는가.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게 삼식이라고 하지만 듣는 삼식이 아버지는 너무 많이 속상할 듯 하다. 결혼하고 아이낳고 아이들 키우면서 젊은 시절 다 보내고 늙고 경제활동 하지 못하게 됐을 때 남아도는 갑자기 많아진 시간이 부담스러운 남자들에겐 여유로운 퇴직후의 생활을 즐기려면, 적어도 아내한테 구박받지 않는 그런 생활을 즐기려면 더 이상 안타까운 모습으로 남지 말고 아무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그 시간을 취미생활로 채우는 것도 방법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